▲사진=게티이미지뱅크 |
8월23일은 가을의 두 번째 절기인 처서(處暑).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며 일교차가 매우 커진다. 차가운 바람 때문에 모기 입이 돌아가고 귀뚜라미가 나와 울기 시작한다. 또 논두렁과 묘소를 찾아 벌초를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라는 말이 있다. 어정거리며 칠월을 보내고 건들리며 팔월을 보낸다는 말로 한적한 농사철을 비유한 말이다. 이 무렵 농부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가을 햇볕에 벼가 잘 자라 이삭이 올라오길 바라는 수밖에.
먼 옛날 선비들은 처서가 지나면 장마에 젖은 책과 옷을 꺼내와 음지에 말리는 음건(陰乾)과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했다. 작은 물건 하나도 소중히 다루는 조상들의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는 처서 풍습이기도 하다.
처서에 내리는 비는 흉작의 징조라는데
입추까지는 ‘그래 막바지 여름이 기승을 부릴 수는 있지’라고 넉넉한 마음이었지만 처서까지 더위가 이어지니 가을은 아직 멀었는가 한탄스러운 마음이 새어 나온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조상들의 농점(農占)은 다양했는데 처서비는 십리에 천석을 감한다는 말이 있다. 처서에 내리는 비가 곡식에 들어가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채 썩어버리기 때문이다. 처서비의 흉작설에 관해서는 전국 어디서나 입모아 말한다. 그만큼 처서무렵의 농작물 발육이 매우 중요했던 것. 1년 농사가 헛수고로 돌아가니 처서비를 기피하는 이유만큼은 절실하게 와 닿는다.
처서에는 폭염에 지친 몸보신을 위해 추어탕과 애호박 칼국수를 주로 먹었다. 환절기 따뜻한 음식으로 몸의 기운을 되살리는 이치다.
혀를 내두르게 하는 폭염 속에서도 아침 혹은 늦은 밤 아주 미세하게 가을바람은 스쳐가고 있다. 조금 늦을 뿐 계절은 거스름이 없으니 머지않아 처서다운 가을바람이 불어오겠지. 길고 긴 여름, 이번 가을은 유독 짧게만 느껴질 것 같다. 높고 파란 하늘, 오색으로 곱게 물든 곡식들. 그 아래서 포동하게 살이 오른 우리들. 가을을 향해 꾸는 우리들의 꿈에는 소박하지만 간절함이 있다.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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