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홍주는 서해안의 대읍으로서 당시 27개의 면을 관할하고 있었다. 해미(海美) 너머에 있는 운천면(雲川面), 덕산(德山) 너머에 있는 합북면(合北面), 신북면(新北面), 신남면(新南面), 현내면(縣內面) 등은 모두 월경지로서 읍치(고을의 중심)로부터 멀게는 120리에 걸쳐 있다.
산지는 연맥을 강조하는 수법으로 그려져 있으며 특정의 산들은 수목도 그려 넣었다. 지도의 방위 표시는 없으나 서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고 고을의 주산인 백월산(白月山)을 위쪽으로 하여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치 공간을 그렸다.
홍주의 읍치는 고려 해풍현(海豊縣) 이래로 빈번한 전란에도 불구하고 이전되지 않고 현 위치를 고수해 왔다. 성곽의 내부에는 목(牧) 관아(官衙) 건물과 충청도의 전영(前營)이었던 홍주진관(洪州鎭管)의 건물이 표시돼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서해안의 19개 군현이 이에 소속돼 있었다.
성곽에는 남문이 없는데 관청이 있던 곳을 말하는 읍기(邑基)의 방해가 돼 만들지 않았고 대신에 나무를 심어 보호했음을 알 수 있다. 동문(東門) 앞의 하천을 따라서도 숲이 그려져 있는데 이 지역의 범람을 막아주는 기능도 지녔을 것으로 보인다.
내포=강제일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