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 명칭이 나오는 고려사<왼쪽>와 대동지지. |
홍성군이 우리나라 고려사 전공교수로부터 자문을 통한 시기고증을 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이진한 교수(고려대 한국사학과)는 “고려사절요에는 홍주명칭 사용시기는 1018~1041년 사이로 추정하며 대동지지에 1018년이라고 나온 만큼 이때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홍주지명 최초 사용시기에 대한 의견을 냈다.
박종기 교수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 전 중세사학회 회장)는 “현종 3년(1012)까지 운주로 불렸으며 칠대실록 편찬된 무렵(현종4년(1014) ~ 덕종3년(1034))에 홍주로 개칭됐다”며 “대동지지에도 홍주로 이름이 바뀐 시기를 현종 9년(1018)으로 보고 있다”며 같은 의견을 냈다.
윤용혁 교수(공주대 역사교육과)도 “고려사 지리지 현종3년(1012)은 운주 파견 지방관을 도단련사에서 지주사로 개칭했으며 홍주로 이름을 고친 것은 그 뒤에 고친 것”이라며 “대동지지에도 현종 9년(1018) 홍주 지명설을 명문화하고 있다”고 의견을 냈다.
역사서에서는 관련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고려사에는 <洪州 成宗十四年 置運州都團練使 顯宗三年 改知州事 後改今名(太祖實錄 十年三月 王入運州 註云卽今洪州) 恭愍王五年 以王師普愚內鄕 陞爲牧 十七年 降知州事 二十年 爲牧 別號安平 又海豊(皆成廟所定) 又號海興 屬郡三縣十一>으로 나와 있다.
학자들은 이를 <홍주. (고려)성종 14년(995) (이곳에) 운주(運州) 도단련사(都團練使가) 설치됐다. 현종 3년(1012) 지주사(知州事)로 고쳤다. 뒤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고려)태조실록(太祖實錄) 10년(927) 3월에 '왕이 운주(運州)에 들어갔다'라면서, 주(註)를 붙이기를 '운주는 지금의 홍주(洪州)다'고 했다). 공민왕 5년(1356) 왕사 보우(普遇)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목으로 승격됐다. 같은 왕 17년 지주사로 (관격을) 내렸다가 20년 다시 목이 됐다. 별호는 안평(安平) 혹은 해풍(海豊)이다(모두 성종때 정했다). 또는 해흥(海興)이라 했다.
속군(屬郡) 3개와 속현(屬縣) 11개가 있다.>로 해석하고 있다.
내포=강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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