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규 목사가 18일 오후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2세. 연합뉴스 자료사진 |
박형규 목사가 향년 92세로 18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되자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박형규 목사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져 22일 월요일 발인될 예정이다.
박형규 목사는 ‘길 위의 목사’라 불리며 평생을 빈민선교와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민주화운동세대인 중년세대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9일 오전 민주화운동의 산 증인 고 박형규 목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명복을 빌며 헌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1960년 419혁명 당시 피 흘리며 쓰러지던 학생들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보았다는 회고 시작으로 으로 민주화운동 전선에 뛰어들었다. 총 6번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정권을 향한 그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남산 부활절 사건, 3.1민주선언 발표 굵직한 사건에 박형규 목사가 있었다.정권에 의해 탄압을 받고 거리로 쫓겨나온 박 목사는 교인들과 6년 동안 서울 중부경찰서 앞에서 노상예배를 이어가기도 했다.
2014년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에 대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박형규 목사는 격동의 시대, 민주화를 외치던 청년들의 편에서 든든한 순례자가 되어주던 우리의 큰 나무였다.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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