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순 소설가 |
김영란법을 무력화시키려는 노이즈마케팅인지도 모르지만 너무나 어지럽다. 정부의 판단대로 김영란법 시행 피해액이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면 그동안 고위공직자들이 그런 선물과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단 말인가? 정부는 김영란법 시행 피해액이 수조원에 달한다고 해서 그만큼의 소비를 부정청탁과 연결 짓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서민의 눈높이에서 보지 않으니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3만 원짜리 식사는 서민에게는 황제식사이다. 최저임금근로자가 이를 먹으려면 적어도 다섯 시간 이상을 일해야 한다. 정부는 3만원으로 제한된 식사비 때문에 한우소비 급감을 우려하는데, 한우 가격이 그렇게 높아야할 이유도 없다. 외국에서 수입한 고급사료 대신에 조사료 (볏짚, 풀 등)를 먹이고 방목한다면 가격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고위공직자에게 한우대접을 못 받게 하는 것이 위법인가?
정부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다. 지난 2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청탁금지법 영향 최소화 TF) 1차 회의에서 김영란법 금액기준을 식사비 5만원, 선물비 10만원으로 상향조정하도록 공식요구하기로 했다고 한다. 헌재가 인정한 김영란법의 입법목적 정당성과 수단의 적정성을 훼손하며 공직자의 청렴성을 짓밟아버리겠다는 치졸한 행위이다. 그렇게 절박하다면 차라리 뇌물경제학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노벨상이나 타시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
우리 몸에서 자라고 있는 선입견이란 맹견이 문제다. 경제위축이 예견된다고 해도 민주정부라면 이렇게 대응해선 안 된다. 고질적인 병폐로 굳어진 대한민국의 접대문화가 바뀔 수만 있다면 어떤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옳은 일이 아닌가? 김영란법 시행으로 농축산물 선물수요 감소가 1조 1000억~1조 3000억, 음식물매출 수요 감소가 3조~4조 2,000억, 취업감소가 15만 2000명, 고용감소가 5만 9000명으로 예상된다는 농촌경제연구소의 분석은 고급상품에 치우친 오판이다.
고개를 약간 돌려보자. 김영란법 시행으로 경기가 살아날 것을 예상하고 준비하는 중소기업이 많다. 한우와 인삼 등 고급농축산물의 수요는 약간 줄 수도 있을 테지만, 어묵, 김, 미역, 쌀, 떡 등을 생산하는 농어민은 5만원에 맞춰 상품을 고급화하고 신상품을 개발하여 공급량을 대폭 늘릴 계획이다. 기장미역 생산업자들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기장미역 판매량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환호성을 울리고 있다. 부자들이 즐겨 찾는 고급식품은 줄지라도 서민이 즐겨 먹는 식품소비가 크게 늘어 오히려 경기가 되살아날 것이다.
누가복음(9:62)에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를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경제적 위축이 염려된다고 해도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린 이상, 김영란법의 정당성을 믿고 쭉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
필자는 김영란법 시행일인 9월 28일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김영란법을 기반으로 어지러운 정치판이 정화되고, 탐관오리가 완전히 뿌리 뽑힌다면 청정한 사회, 세계가 부러워하는 동방예의지국이 될 수 있다. 이번 김영란법에서 빠진 이해충돌방지조항도 국민의당의 염원대로 복원되어 이참에 아예 부정부패를 완전히 척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영란법으로 선진국이 될 기틀을 다지고, 우리 한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 이완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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