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연합 DB |
어제는 정말이지 큰 맘 먹고 에어컨을 켰다. 그러자 아내의 눈이 황소 눈처럼 커졌다. “당신 지금 제 정신이여? 그러다가 전기료 폭탄 맞으면 어쩌려고!” 그러나 나는 짐짓 태연을 가장하며 시치미를 뗐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여, 딱 한 시간만 틀자고.” 그렇게 올 들어 두 번째로 에어컨을 가동했다. 그러자 비로소 무더위가 달아나면서 죽어가던 심신이 겨우 살아나는 듯 했다. 비단 우리 집뿐만 아니라 전국이 폭염으로 인해 난리다.
기온의 1도 상승에 전기료 555억 원이 소요되며 폭염으로 인해 20일간 더 쓴 수돗물 값만 66억 원이라는 뉴스가 돋보이는 즈음이다. 광복절은 벌써 지나갔으되 무더위에서의 ‘해방’은 아직도 멀었지 싶다.
예년 같으면 벌써 조석으로 찬바람이 불었을 때다. 그러나 요즘 날씨는 야박한 정부를 닮았는지 한 치의 양보조차 안 보인다. 가정용 전기료의 누진제에 문제가 있다며 국민들의 원성이 여전히 하늘에 가 닿아 있다.
그럼에도 주무부서인 산자부는 꿈적도 안 하는 모양새다. 되레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아 가뜩이나 더워서 환장할 지경인 국민들의 스트레스 지수마저 올려놓았다.
아울러 “대체 산업자원부냐, 아님 한전산업부냐? 그렇다면 당신들의 사무실부터 하루에 3시간만 가동하고 에어컨을 꺼라!” 는 등의 비난이 속출하고 있다. 개인적 편견인데 천문학적 수익을 거두고 있는 한전을 ‘적극옹호’하고 있는 산자부의 행태는 아마도 다음에 그 자리로 이동할 산자부 간부들을 배려한 일종의 포석이 아닐까도 싶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부기관, 특히나 산자부는 이런 관점에서도 한참이나 벗어나 있지 싶다. 간부들까지 나서서 가정용 전기료의 인하는 없다며 배짱을 부린 걸 기억한다.
그렇게 요지부동하던 산자부가 대통령 말 한 마디에 돌변하여 호들갑을 떠는 걸 보자면 진짜 어이마저 상실되는 기분이었다. 대통령이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세상은 부자연스럽고 민주적이지도 않다.
과거 진시황은 그 만기친람이 지나쳐서 중차대한 국사의 결제를 함에 있어서도 아예 저울로 재서 대충대충 했다는 고사도 있지 않은가? 하여간 그렇게 소신 없는 공무원들이 고위직에서 거들먹거림을 보자면 “99% 민중은 개돼지”라는 막말을 한 전(前)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궤변이 오버랩 된다.
아울러 그들이 정한 카르텔 안에 속해 있는 나, 이 ‘개돼지’는 따라서 오늘 역시 찜통더위임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지는 것이다. 그러나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영화를 보러가는 게 그 묘수이다. 연전 책으로도 본 <덕혜옹주>를 구경하러 갈 참이다. 그러면 최소한 두 시간 정도는 '피서'가 가능할 것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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