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한철 민주평화통일협회 부회장·시인·수필가 |
조금은 그분들에게 위안이 되고, 편안한 마음의 안식을 드리고자 눈물 겨운 역사를 써본다. 영화 '귀향'은 14년만에, 우리 시민의 힘으로 감독 조정래씨가 제작했다.
꽃다운 나이에 낯선 곳으로 무작정 끌고 간 사람들이 제 자리로 돌려 놓지 않으면, 고향으로 찾아갈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온 10대 어린 천진한 소녀들이 있다,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간 그분들 가운데 상당수가 돌아 가셨거나 버려졌고, 극히 일부가 고국에 돌아와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고 계시다.
조정래 감독의 '귀향'은 1943년 15세 전후에 위안소로 끌려간 소녀들의 과거를 비추고, 1991년을 사는 어린 무녀가 타국에서 숨진 위안부 피해 소녀들의 넋을 고향으로 데려오는 내용의 영화다. 이 영화가 구성된 지 14년만에 개봉했다. 온 국민이 자진적으로 동참하고, 7만5270명이 참여한 가운데 시민이 11억 6122만원의 제작비를 순수하게 후원해서 어렵게 '슬픈 귀향' 영화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남기게 되었다.
영화 내용은 1943년 천진난만한 철부지 열네살 정민(강하나)이 영문도 모른채 잔인 무도한 일본군 손에 이끌려 가족의 품을 떠난다. 정민은 함께 끌려온 영화(서미지),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과 함께 기차에 실려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한다. 제 2차 세계대전, 차디찬 전쟁터에서 버려진 정민과 아이들. 그 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일본군과 가혹하고 끔찍한 고통과 아픔, 모진 학대, 추악한 치욕적 모멸감, 인간 이하의 동물적 대우였다. 한스런 역사의 뒤안길 소용돌이 속에서 누구를 원망해야 되는가, 나라 잃은 슬픈 비애가 아니던가.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 당시 20만명이 강제로 끌려가 238명만 내 조국에 돌아 왔다. 그리고 현재 생존해 계신 분이 40명이다. '지워선 안 될 역사'. 영화관 전체가 온통 울음 바다가 된 위안부 영화.
사실적 산실인 역사가 고증돼 한스런 비운의 가슴 아픈 역사지만 개봉되어 다행이고, 기쁜 일이다, 이미 고인이 되신 영혼분들께 찬미 기도를 드린다.
70여년 전의 악몽으로 살아 생전 가슴속에 슬픈 한을 품고 살아오신 분들. 그분들의 명예 훼손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상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분들이 그 한 많던 삶을 마감하고 있는 것이기에 조 감독의 '슬픈 귀향'은 어찌보면, 그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 모두 한 번쯤 반성해 보아야 한다. 정치적으로, 효선, 미선 일, 세월호 사건, 광우병 등 역사의 뒤안길에서 희생되신 분들 어느 누가 무엇으로 책임지고 보상해 줄 것인가? 웃다가 울다가 한마음 한뜻으로 가슴치며 분노에 치욕 떨며, 울분을 억제치 못하고, 평생 지울 수 없는 치욕적 아픔을 안고 모멸감을 느끼며 살아오신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는 누구의 원죄인가?
우리 국민 모두에게 가슴 아픈 사연이다.
꽃 봉우리가 제대로 피지 못한 20만명의 소녀들이 끌려가 238명만이 만신창이가 되어 고국에 돌아왔지만, 그분들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수십년을 혼자만이 지닌 아프고 슬픈 비밀로 가슴에 안고, 뒤늦게 공동으로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그분들은 평생을 지울 수 없는 아픈 상처 때문에 일반 평범한 가정의 어머니가 못 되었고, 여느 할머니가 될 수 없었다.
그분들을 위한 보상금 100억원에 합의했다지만 20만명에 100억원이면 한 할머니당 5만엔이란 계산이 나온다. 그녀들의 어린 소녀 시절(15~16세)에 당한 수모는와 상처는 말로써 형언할 수 없다. 정부 행정부처, 국회는 무엇을 앞장서 해결하고 권익을 보호했단 말인가?
일본 정부는 그간 강제 징용에 의한 식민지 지배하 위안부 운영을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동문서답했다.
우리는 어려운 고초속에 광복 70주년을 맞았다. 민주주의의 가장 저해되는 요소는 중상모략, 권모술수, 당리 당략적 사고다. 정치인들에게 상생 정치를 부탁드린다. 민주주의의 성화를 피우고 용서와 관용, 화합을 기원한다.
임한철 민주평화통일협회 부회장·시인·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