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선실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라던 말을 믿었던 수많은 사람들, 가습기에 살균제를 넣어야 한다는 굴지의 기업들을 믿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고, 그래도 국민들을 위하여 일하지 않겠냐고 막연하게나마 믿고 있던 정치인들이 사실은 자신들의 권력 투쟁을 최우선으로 일한다는 실망스런 사실이 지난 총선 과정에서 똑똑히 목격되었으며, 권력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위임해준 국민들의 믿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상상할 수 없는 부정한 방법으로 개인의 잇속을 챙기는 것도 자주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신뢰의 사회가 유지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큰 병이라도 난 것 같으면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진단을 확인해야 하고, 밤길에 낯선 사람이라도 지나칠라 치면 겁이 나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피싱 당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까지 하다. 정부를 믿어달라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호소하고 있지만 사드의 성주 배치가 쉽지 않아 보이는 것도 우리가 불신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출연연들도 불신의 시대의 영향 아래에서 자유롭지 않다. 출연연들과 관련되어 시행되고 있는 여러 제도들이 불신을 바탕으로 마련된 것이라는 지적이 계속되어 왔다. 재정 당국이 출연연들을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하여 예산, 인력, 급여 등에 미시적으로 관여하는 것도 결국 '관여하지 않으면 방만하게 운영될 것'이라는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또 논문 발표, 특허 출원, 기술 이전 등 정량적 지표들이 포함된 지나치게 미시적인 경영 계획을 요구하고 미시적인 기관 평가를 시행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출연연들에 대한 소관 당국의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재정 당국이나 소관 당국을 출연연의 연구현장에서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창의적이어야 할 연구현장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목적을 가지고 혹은 행정편의를 위하여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통폐합, 소속 부처의 변경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추진되었던 구조조정과 기관장 선임 과정 등이 출연연 연구현장의 당국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데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불신은 출연연 내부에도 존재하고 있다. 정량화가 가능한 지표를 중심으로 인사평가 제도가 나날이 더 정교하게 변해가는 것은 공정성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정량화가 가능한 그러한 지표들이 성과를 나타내기에 타당한 것들인가 하는 타당성의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사평가는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출연연들이 국민의 기대에 더 잘 부응하기 위하여 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출연연 내외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다만 불신의 시대에 소관 당국으로부터 시도되는 강제적 변화는 과거의 예에서 보듯이 불신만을 더 키울 뿐 성공하기 어렵다. 출연연의 진정한 변화는 내부로부터 추진될 때만 가능하다. 문제는 어떻게 변화의 동력을 키워 나갈 것이냐다.
필자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출연연 변화의 동력을 키워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연구기관으로서 출연연의 기본은 연구하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연구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연구가 모든 행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연구자들이 모여서 식사할 때도 산책할 때도 제도가 아니라 연구가 화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먼저 문제들을 크게 만들고 치열하게 노력하여 그 문제들을 풀어내야 한다.
선배 과학기술자들이 TDX, CDMA, 원자력 발전 연구개발 목표를 세우고 치열하게 연구하여 성공하였던 것처럼. 필자가 보기에는 그것만이 진정한 출연연 변화의 유일한 해법이다.
조성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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