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영화 '버스44' 포스터 |
“딩동딩동” 이른 아침부터 초인종이 울린다. 마침 통화중이라 누구인지 확인도 못한 채 문을 열었다. 눈앞에 남다른 패션을 선보이고 있는 멋쟁이 박순금 여사가 서 계시다. 친정 엄마다. 하던 통화를 마저 끝내려 하였는데 그새를 못 참고 불호령이 떨어진다.
“짐 안 받고 뭐하냐?”
딸네 집 오신다고 양손에 무언가를 바리바리 들고 오셨다. 친정엄마의 호령에 끝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불같은 성격을 알기에 아무 군소리 없이 얼른 짐을 받아 들었다.
51년 전 친정 엄마는 가난한 시골 9남매의 장녀로 집안을 일으키고 말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혼자 서울로 상경했다. 전라도 광주의 똑순이 기질로 웬만한 남자들도 못 하는 일들을 거뜬히 해나가며 돈을 벌었다. 벌이가 좋아 동생들을 서울로 다 데리고 와서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다 보내고, 부모님에게는 농사 지을 넓은 땅도 사드리며 자기의 꿈을 이룬 여장부다.
그만큼 오지랖도 넓어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보지 못하고 주머니에 가진 돈을 다 내어주기도 하고 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로인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인생의 굴곡도 많은 여인이었다.
인신매매가 성행할 때 새벽 집 앞 큰길에서 봉고차에 끌려가는 아가씨 고함 소리에 달려가 몇 번을 신고하기도 했고,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엄마와 시장을 가는 길에 한 손에는 지갑을 또 한 손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의 팔을 붙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는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보였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고 웅성거리고는 있었지만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꼬리며, 숯검댕이 눈썹, 우락부락한 덩치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인상 때문인지 다들 도움을 주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여학생은 도움을 청하고자 자기 사정을 주위에 호소하고 있었다.
잔뜩 겁먹은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그 때 갑자기 박여사가 나서려는 조짐을 받은 난 엄마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무서운 요즘 세상에 험한 꼴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나의 손길을 세차게 뿌리치는 박여사. 그 남자의 손에서 지갑을 눈 깜짝 할 사이에 낚아채서는 여학생의 손에 쥐어주고 옆에 어리둥절 바라보는 험상궂은 남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여학생을 나무랐다.
“넌 고모한테 왔으면 빨리 가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라며 남자의 손에서 여학생을 떼어냈다. 그리곤 여학생의 손을 이끌고 버스 정류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 험상궂은 남자는 “뭐야 이 아줌마는? 뭐하는 겁니까?” 라고 따져 들었지만 못 들은 척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박여사는 안전하게 버스에 여학생을 태우고 나서야 “나 저애 고모 친구야. 주위에 사람들도 많은데 조용히 가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바로 경찰 부르기 전에.” 라고 하자 험상궂은 남자는 재수 없다며 욕 한마디와 우리 쪽에 더러운 침 사례(謝禮)를 하고는 사라졌다.
그제서야 나도 박여사에게 한 마디 할 수 있었다. “엄마 요새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저 사람이 해꼬지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랬어?”
▲ 단편영화 '버스44' 중 한장면 |
그때 문득 생각나는 영화 하나가 있었다. 홍콩에는 버스44라는 2001년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있다.
내용은 이렇다. 중국의 어느 시골길에 한 청년이 2시간 가까이 기다려 44번 버스를 탄다. 출발한 버스는 얼마 가지 않아 2인조 강도의 습격을 받는다. 승객들의 금품을 빼앗은 강도들은 젊은 여자인 운전사를 성폭행하려 한다.
그런데도 버스 승객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침묵한다. 뒤늦게 버스를 탔던 한 남성만이 용기있게 그 상황에 뛰어들어 말리다가 심하게 얻어맞는다. 급기야 그 강도들은 버스를 세우고 여성 운전기사를 숲으로 끌고 들어가 번갈아 가며 욕을 보인다. 한참 뒤 여성 운전기사는 그 강도들과 돌아온 뒤 강도를 말리던 남자에게 다짜고짜 버스에서 내리라고 한다. 남자는 황당해 하며 “아까 난 당신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기사는 “당신이 내릴 때까지 출발하지 않겠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그러자 승객들은 그 남자를 강제로 끌어내리고 짐도 던져 버린다. 그러자 버스는 출발했고 여성 운전기사는 커브길에 이르자 속도를 내어 그대로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그리고 전원 사망을 한다.
그 여성 기사는 오직 살만한 가치가 있던, 악행을 제지했던 그 남자를 일부러 내리게 하고 외면했던 승객들을 모두 데리고 인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이 ‘버스44‘라는 영화에서 기사가 당하는 일이 타인의 일이고 자신에게 위험이 오지 않았으니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버스가 빨리 운행되기만을 기다리던 승객들. 그들을 바라보던 여자 운전기사의 원망에 찬 눈빛 연기가 가슴을 파고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버스기사의 심정을 담아낸 표정과 눈빛이었기에 시리도록 남았다.
이 영화를 통해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은 물론이고 방관자도 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나 또한 방관자는 아닐까 반문해 본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타인에 대해 모른 체하는 방관자 보다는 오히려 오지랖을 넓혀 아는 체 하는 게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그러므로 70이 넘어 주름살로 얼룩진 엄마가 자랑스럽다. 방관자가 아닌 오지랖 넓은 우리 멋쟁이 박순금 여사는 오늘도 어디선가 큰소리치며 이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김소영(태민) 시인
▲ 김소영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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