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종한 대전지방보훈청 보훈정책자문위원ㆍ시인 |
주제는'6·25전쟁 대전지구 전투 전승기념과 나라사랑교육, 호국보훈'으로 충남대 조차현 박사와 대덕대학 허동욱 교수가 발표를 했고 1부 사회는 충남대 박재필 교수가, 2부 사회는 순천향대 라미경 교수가 사회를 보았다. 라운드테이블 사회는 충남대 군사학부장 길병옥 교수가 맡았고 필자는 토론자로 참가했다.
이 토론을 준비하면서 미국 종군기자 페렌바크의 실록 한국전쟁을 읽으며 새로운 소회를 가지게 되었다. 대전지구 전투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종군기자였던 페렌바크는 “한국전쟁은 힘을 시험한 전쟁이 아니라 의지를 시험한 기묘한 전쟁”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6·25 전쟁을 기습 당했다고 이야기한다. 기습은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당했다는 뜻인데 이는 우리 뿐만이 아니고 미군도 그러했던 것 같다.
스미스 부대의 오산전투부터 금강전투까지 미군은 엄청 당황하고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동방의 작은 소국 북한의 군대가 전혀 겪어보지 못한 전술로 달려드는데 처음에는 무시했다가 당하면서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신병들은 공포에 빠져서 명령이 통하지 않았고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지형과 기후 속에서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첫 부대로 투입되었던 미 육군 24사단과 딘 소장은 대전에서 20일까지 지연하면서 대전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 명령을 24사단과 딘 소장이 수행하면서 얻어낸 중요한 결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전에서의 3일은 낙동강 방어선을 준비할 수 있었고, 한미당국 그리고 병사들간에 신뢰가 형성될 수 있었다. 대전 지구전투 전까지는 한국과 미국은 서로 신뢰하지 못했다.
해방군이었던 미군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고 6·25전쟁 전 댈러스 미 국무장관은 애치슨 라인 선언으로 소련의 스탈린, 중공의 모택동, 북한의 김일성에게 중대한 오판을 불러 일으키는 언행을 했다.
딘소장은 포로에서 풀려난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대전에 머무른 이유를 변명할 의사는 없다. 그 당시 나는 내가 마땅히 대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페렌바크의 말처럼 의지의 보여준 행동이었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상식적으로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으면 사단장이 수행원 한 명없이 고립되고 36일간 여름 산하를 헤메었고 결국 포로가 되었을까.
신생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꼭 지키겠다는 미국의 결의를 66년 전 7월 대전 지구 전투에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신뢰를 바탕으로 낙동강 전선에서 우리는 승리할수 있었고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수도 서울을 수복할 수 있었으며 공산주의의 국제적인 확산을 저지했고 세계를 놀라게 하는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루었다.
6·25전쟁의 교훈은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당하는 전쟁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당황스런 일인 지를 느끼게 하는데 작금의 상황이 그러하다. 북한핵과 미사일에 대응 할수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사드 포대 배치를 놓고 이렇게 국론이 분열되는 것은 대한민국 안보에 국민의 안전에 전혀 무익하다는걸 강조하고 싶다.
이제 66년전 7월 18일부터 20일까지 있었던 대전전투의 교훈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지켜온 한국과 미국간의 신뢰를 되새겨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중심한 통일을 이루어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백척 간두에 서 있다. 한반도 정세는 하루도 눈을 돌릴 수 없을 만큼 격변하고 있고 북한의 핵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 이상인 듯 하다.
생명을 바쳐가면서 얻어낸 신뢰를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하고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1950년 만큼이나 뜨거운 2016년 7월에 하고 싶다.
정종한 대전지방보훈청 보훈정책자문위원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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