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
단체장에게 문화재단은 선거 참모들이나 그들의 천거에 따른 누군가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곳이고, 공무원들에게 문화재단은 본래 자신들의 할 일을 정원 밖 조직에 맡겼으므로 그저 무탈하도록 하나하나 관리·감독해야 할 수하조직으로 간주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문화재단 위기의 뿌리가 있다고 썼다. 이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이어 문화재단의 진정한 리더십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리더십은 재단의 운영 자율성, 문화예술 전문성, 중장기적 성과평가 시스템 등 문화와 예술의 고유한 가치를 최대화할 수 있는 요인들로 구성된다는 설문조사 결과와 함께, 지자체와 단체장은 재단 운영의 자율성과 인사·사업 운영의 공정성, 재단 CEO의 문화예술 전문성과 전문경영 능력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및 그에 따른 인사 원칙 등을 존중해야 한다고 썼다. 이른바 정치권력과 행정권력으로부터의 '팔 길이(arm's length)'가 지켜질 때 비로소 문화재단은 위기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며, 이것이 문화와 예술의 본연의 길이라고 마무리하였다.
문화재단과 같이 창의성과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화예술부문의 전략 집행 기구는 정치적 외압이나 행정적 간섭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바람직하다. 따라서 재단에는 책임성을 수반한 자율성과, 자율성을 전제로 한 책임성을 충분히 부여해야 한다. 이것이 '팔 길이 원리(arm's length principle)'다. 물론 문화재단이 현재의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들의 역량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 또한 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나 적어도 일부 핵심 간부들의 자질과 능력 부족의 문제는 이 '팔 길이 원리'의 무시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기도 함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전국의 문화재단들, 생각할수록 정말 위기다.
문화재단 CEO나 고위간부는 새로운 경험을 쌓는 직(職)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펼치는 직이다. 정치적 뒷배를 갑옷처럼 걸치고 앉아 마음만 먹는다고 감당할 수 있는 직이 아니다. 아무리 작아도 예술의 질을 옹호해야 하는 전문공연장이라면 무대·조명·음향 전문가들이 다 필요하다는 이치를 그들은 알지 못한다. 예술의 본질이나 예술가의 특성은 말할 것도 없이 사무 보조인력과 전문예술프로그램 매니저의 차이 같은 것도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설익은 의견들을 분별해 내지 못하고 판단착오를 소신인 양 밀어붙이다 보니, 지원 심의도, 사업 진행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언죽번죽 이를 합리화하는 측근 참모들에게는 오히려, 괜찮다, 힘내라, 어깨를 두드려줄지도 모를 일이다. 재단에 대한 지역사회의 신뢰가 실추하고, 각종 평가 점수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예정된 수순!
재단이 위탁관리하는 어느 공연장에 다량의 음식물을 반입한 일이 문제가 됐던 때의 실화. 누군가의 청탁이나 지시로 이를 강요했을 재단 담당 공무원은 뒤로 숨고, 처음엔 세차게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울지도 못한 채 겨자를 먹어야 했던 재단은 곧 언론과 의회로부터 호되게 추궁을 당한다.
'갑'의 진실을 냉가슴에 묻은 벙어리 '을'의 속눈물은 정녕 한 말(斗)은 되었으리라. 측은지심으로 덧붙인 사족(蛇足)이었다. 모두를 둘러싸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것이 문화지만, 그 행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해당 분야 역량을 이미 갖춘 전문가가 앉아야 하는 자리가 많다. 문화재단 CEO와 고위간부 직이 바로 그렇다. 전 축구국가대표 이영표 씨의 어록으로 오늘 글을 맺는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입니다.”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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