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티 이미지 뱅크 |
아침부터 가느다란 송곳으로 머릿속을 찔러대는 듯한 통증에 미간 사이에 주름이 그려졌다. 나는 가끔 심한 두통에 시달린다. 한번 나타나면 적어도 이틀은 꼼짝없이 누워 쉬어야 나아진다. 심한 두통이 속까지 건드려 식사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죽으로 겨우 끼니를 때워야 한다. 이때 가장 많이 애용하는 건 벌건 배추김치를 쫑쫑 썰어 묵은 밥을 넣고 잔멸치를 넣어 끓인 김치죽이다. 이것이 그렇게 속을 달래 줄 수가 없다. 예전에 임신을 했을 때 즐겨먹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엊그저께도 심한 두통에 시달리면서 도대체 이 두통은 왜 생겨서 나를 이리도 괴롭히나하고 화가 났다. 콕콕 쑤셔대던 통증은 눈으로까지 내려와 눈을 뜰 수가 없어졌다.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침대에 누워 두통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두통이 왜 생기는 걸까? 어떨 때 생기지?’
내가 너무 활동량이 많아서 잠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경 쓰는 일이 많아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기 때문일까? 곰곰 생각해 보니, 이 두통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오는 고통이 아니었다.
그럼 왜?
오히려 나를 쉬게 하고 몸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오는 하나의 선물과 같은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야, 너 좀 쉬어야 할 때야’ 하며 몸에서 주는 신호였던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바꿨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쉬어 주기로…….
먹기 좋은 부드러운 음식을 골라 먹고 잠도 푹 자며 지냈다. 그랬더니 다른 때 보다 훨씬 빨리 회복이 되는 것이다. 그래, 나에게 오는 두통은 신이 내린 축복. 쉴 때 쉬라는 신호였던 것이다.
이솝 우화인 토끼와 거북의 경주에서 토끼는 달리다 말고 잠을 잤던 것이다. 경주에서 좀 뒤처지면 어떠랴? 건강이 최고인 것을. 옛날 우리 부모님들은 거북이처럼 쉬지 않고 일만했다.
토요일도 없었고 휴일도 없었다. 그 결과 평균 수명이 50을 좀 넘었다. 그러나 주 5일제가 생기고 일할 때 토끼처럼 열심히 일하고 쉴 때 푹 쉬는 요즈음 평균 수명이 80이지 않는가? 누군가는 의술이 발달해서 그렇다고 할지 모르나 쉬지 않고 일하고 신경쓰다보면 몸도 맘도 지치게 마련.
좀 다른 이야기지만 옛 이야기 한번 해보자.
어떤 나이 든 스승에게 항상 불평만 하는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스승은 제자에게 소금을 사오라고 시켰다. 그리고는 제자에게 물이 든 잔에 소금을 한웅큼 넣고는 마셔 보라고 했다. 스승은 물었다. “맛이 어떠냐?”
제자는 침을 뱉으며 말했다. “짜다 못해 씁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남은 소금을 맑은 호수에 넣으라고 했다. “자, 이제 호수의 물을 마셔보아라”
제자는 스승이 시키는 대로 했다.
“맛이 어떠냐?”
“아주 물맛이 좋습니다.”
“짠맛이 느껴지느냐?”
“아닙니다.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스승은 제자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고통은 이 소금처럼 양이 정해져 있느니라. 단지 고통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크기에 따라 고통의 강도가 결정되지. 그러니 고통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넓게 가져라. 잔(盞)이 아니라 호수만큼 크게 말이다.”
짠맛의 유무(有無)는 물이 담겨있는 그릇의 크기에 달려 있다. 우리 인간사도 그렇다. 거북이처럼 쉬지 않고 일만하면 몸에 무리가 와서 결국 병원신세를 지게 마련이다. 왜 우리 부모 세대는 쉬지 않고 노력만 하는 거북이를 본받자 하였을까? 토끼처럼 일 할 땐 하고 쉴 때 쉬는 현명함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나는 세상에서 신축성(伸縮性)이 큰 것은 호수나 바다가 아닌 바로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면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지게 되고,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지게 되면 모든 불행과 시련이 몰아닥친다 해도 큰 파도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
어제 선물 받은 시집 속 자신의 통증을 큰 그릇에 담는 법을 알리는 시 하나를 발견했다.
하늘의 또 하나의 선물일까?
55병동 최송석
차단된 시간 위에 놓인 불꽃. / 간이역 같은 병동은
거치지 않아도 아쉬울 것이 없는 곳인데
세월이 번번이 육신을 끌고 들어와 / 속속들이 수색을 한다.
모진 것들이 속을 파고드는 통증 속에 / 존립의 존재는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상황을 어찌 할 것인가는 거의 자율이 아니다.
- 하 략-
/김소영(태민) 시인
▲ 김소영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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