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환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산업수학혁신센터장 |
중재자 또는 사회자라는 의미를 가진 모더레이터는 양방향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다. 기업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수학자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해서 설명해야 한다. 반대로 수학자들이 제시한 해결책을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프로토타입이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업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수학 지식은 물론 컴퓨터를 도구로 다루고 기업과 소통하는 능력은 필수다.
올 초에 열린 다보스 포럼의 핵심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의 이해”였다. 물리적, 디지털, 생물학적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기술의 융합이 이를 특징짓는다. 시대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을 것 같던 수학자들도 연구실을 나와 '산업수학'이란 이름으로 산업 현장과 부대끼려 하고 있다.
산업수학은 산업 현장의 실질적인 필요에 대응하는 수학 분야라는 좁은 의미를 넘어 향후 쓰이게 될 미래 기술까지 아우르는 넓은 의미의 새로운 분야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가 벽을 허물고 길을 제시할 것인가? 과학의 역사가 보여주듯 산업수학의 미래지향은 정체된 성장 동력을 일으키는 새로운 힘을 제공한다.
데이터 분석 기술의 변화는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통계를 이용한 전통적인 데이터 분석 방법이 한계에 이르자 수십 년 전에 개발된 기계학습이 대안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순수 학문으로만 여겨지던 위상수학도 완전히 새로운 결과를 보여주는 데이터 분석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스탠퍼드대학 교수였던 '구나 칼슨'이 설립한 AYASDI가 대표적이다.
기업의 최종 생산물은 엔지니어링, 즉 공학을 통해 나온다. 산업수학과 공학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하는 관계다. 산업수학이 공학에 비해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새로운 기술 개발과 적용에 힘을 쓸 수 있지만 최종 결과물이 나오는 데는 공학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인인증서를 비롯해 현재 널리 쓰고 있는 RSA 암호는 퀀텀 컴퓨터에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 보안 기업들은 여전히 RSA 암호를 적용한 제품 생산에만 집중하고 있고, 그들에게 RSA를 대체할 포스트 퀀텀 암호의 개발은 언감생심이다. 공학과 차별된 산업수학의 역할이 뚜렷하게 보인다.
지난 4월 27일 미래창조과학부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서 “산업수학 육성방안”이 의결되었다. 산업수학 육성방안은 산업 현장의 문제 발굴과 해결, 그리고 산업수학 인재 양성 및 산업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는 대한수학회와 함께 작년부터 여러 가지 산업수학 프로그램들을 진행해 왔다. 국내 21개 대학들이 참가해 각자의 산업수학 활동들을 시험하고 있는 “산업수학 점화프로그램”과 세계 산업수학 거장들이 한 자리에 모인 “대한민국 산업수학 주간”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산업수학 육성방안이 나오게 된 밑거름이다.
산업수학 인재 양성의 핵심은 모더레이터 육성에 있다. 국내에서 산업수학 모더레이터들을 절실하게 원하는 기업은 자체 연구소를 통해 R&D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이나 유수의 중견기업들이 아니라 R&D 능력이 없는 스타트업들이다. 올 삼월 국가수리과학연구소는 경기도의 협조를 얻어 판교 테크노밸리에 스타트업들을 중심으로 산업수학 모더레이터들이 활동하는 플레이그라운드 “산업수학혁신센터”를 열었다.
기업의 문제를 듣고 함께 해결책을 논의하고 산업수학 관련 정보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산업수학혁신센터, 그 곳에 가면 산업수학 모더레이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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