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숙 충남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
이런 상황을 반영한 듯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복잡한 사회, 거미줄 같은 관계들 속에서 인문학이 어떤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초중등 과정에 인성교육 5개년 종합계획에 관한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되고, 대학에서도 인성을 포함한 인문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인문학 강연이나 관련 책들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전문 분야에 인문적 사고를 융합하려는 기획들이 모색되고 있다. 이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풀어줄 해법을 인문학 안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로 읽힌다. 우리에게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것은 재론할 일이 아니지만, '인문경영', '맞춤형 인문학', '힐링인문' 등 인문학에 수식어와 매뉴얼이 덧대지면서 인문학의 고유성과 가치가 훼손되거나 수단으로 여겨질까 한편으로 우려스럽다.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이 생각하고 호흡하는 순간부터 지속되어 온 인류의 오랜 기억이자 근원이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가치는 무엇인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들로부터 인문적 사고는 시작된다. 그래서 인문학을 어렵거나 낯선 것으로 여길 필요가 없다. 듣고 상상하는 접속의 순간, 직접 만나고 말하지 않아도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인문적 소양이다.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 배우며 내 삶에 적용해 보는 것, 그것이 인문학인 것이다. 인문학은 나와 타자, 그리고 세계와의 만남이다. 또한 그것은 세상을 향한 무한한 호기심이며,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관계망에 대한 탐색이다. 인문학은 아픈 각성을 동반하는 성찰이며, 나와 세상에 대한 위로이자 환대다.
인문학을 이루는 기본은 언어다. 언어는 어떤 한 대상을 누가, 어떻게 보는가의 관점 혹은 태도이며 인문학의 구체적 실현태이다. 언어는 발화하는 사람과 사회의 얼굴인 동시에 건강성을 가늠하는 잣대다. 최근 공분을 일으킨 교육 고위공무원의 신분제의 공고화와 개돼지 발언,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종놈 발언, 진짜와 가짜를 시비하는 불화의 정치언어, 그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나타난 서울 유명대학 남학생들의 동급 여학생들에 대한 성적 비하와 저급한 은유들은 우리 사회의 민낯이며, 분열과 모멸감을 야기한다. 하루다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무분별한 신조어와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의 말들은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말이 되기 때문에 생각을 조심하고, 행동이 되기 때문에 말을 조심하며, 습관이 되기 때문에 행동을 조심하고, 인격이 되기 때문에 습관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생각과 말과 행동과 습관과 인격은 연결되어 한 인간을 이룬다. 또한 그 사회의 문화와 품격을 형성한다. 죽음과 슬픔을 조롱하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며 합리적 판단과 민주적 절차가 부재하는 사회, 소수자의 인권이 무시되고 소외 받는 일상, 그리고 소수의 권력이 다수의 생존의 삶을 억압하는 공동체가 과연 공정하고 정의로운지 성찰해야 한다.
자신의 운명 때문에 전염병과 기근이 닥쳐 죽어가는 시민들을 보고 스스로 눈을 찔러 피를 흘리고 발목에 못을 박고 기어가며 참회한 오이디푸스의 윤리까지는 아니더라도, 타인을 존중하고 상처를 나누는 공감능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거세지고 경쟁이데올로기가 과열될수록 인문학을 바로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연대가 필요하다. 인권의 감수성은 나와 당신에게 다가가는 끝없는 사랑으로 발휘된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 이것이 지금 우리가 인문학을 만나야 하는 이유다.
김정숙 충남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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