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건양대 총장 |
중국이 21세기 외교적 수사로 가장 내세우고 있는 말은 이 '굴기'에 '평화'를 더한 '화평굴기(和平崛起)'다. 이는 '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의미로 2003년 후진타오(胡錦濤)를 정점으로 하는 새 지도부가 등장하면서 중국의 외교노선으로 정착되었다. 이는 19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이 추진한 '도광양회(韜光養晦)', 1990년대 장쩌민(江澤民)이 추진한 '대국외교'에 이은 새로운 외교 전략으로, 미국과 일본 등 기존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한 중국 위협론 확산에 대한 대응책으로 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주변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 없이 평화적으로 성장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개혁ㆍ개방을 통한 국력 신장과 동시에 고도성장의 위험을 방지하며, 대외적으로 우호와 번영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선뜻 믿지 못하는 주변국들에 대하여 중국은 '화목한 이웃(睦隣)', '안정된 이웃(安隣)' 그리고 '부유한 이웃(富隣)'을 축으로 하는 삼린(三隣) 정책을 거듭 강조해왔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대국화의 초석을 다진 덩샤오핑이 “칼집에 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는 소극적인 발전전략인 '도광양회'를 펼쳐왔다면, 2000년대를 맡게 된 후진타오는 중국의 발전된 경제적, 정치적 위상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덩치에 걸맞은 강대국의 역할을 하겠다는 적극적 발전전략을 내세운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후 2013년 제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진핑이 국가주석과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어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가 되었으며 전인대 폐막연설을 통해 '중화민족의 부흥'을 역설하며 '중국의 꿈(中國夢)'을 내세웠다. 그리고 '화평굴기'를 강조하며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서 중국의 역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결국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에 달하는 경제력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13억이 넘는 세계 최대의 인구와 광대한 영토, 세계 최고의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강대국의 지위를 얻게 되었음을 대내외에 과시하게 되었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거의 없게 되었고, 중국이 움직이지 않고는 어떤 국제문제라도 원활하게 돌아갈 수 없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같은 중국의 '굴기'를 가장 피부에 와닿게 느끼는 곳은 바로 아시아 주변국들이다. 중국이 재채기라도 한번 하면 모두 감기몸살에 꼼짝 못하고 드러누워야 할 것 같은 위협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 역시 중국을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보고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상태다.
최근 한반도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신경질적인 반응도 그렇고 남지나해에서 동남아국가들과의 해상분쟁에서 막무가내로 자국 이익을 앞세우는 사례들을 보면, 과연 중국이 입만 열면 내세우는 '화평굴기'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반면에 무차별한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로 동북아는 물론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제재에 거의 동조하지 않는 것은 물론, 유엔 주도의 대북한제재에 있어서도 매우 소극적인 반응만 보이고 있을 뿐이다.
중국이 초강대국으로서 미국과 맞먹을 세계적인 지도력을 갖기 위해서는 '국가의 품격' '외교의 품격'을 갖춰야 한다. 20세기 초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부상했던 일본이 강대국의 지위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몰락한 것은 바로 이 '품격' 부재에서 비롯된다.
중국의 '화평굴기'는 아시아 인접국은 물론이고 전세계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대방을 무시한 외교 관행, 영토적 탐욕을 앞세워서는 일본과 같은 운명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 주변국의 안위가 걸린 문제에 임하는 중국의 '품격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도 기대되는 이유다. 일찍이 “아시아 대륙에는 중국과 관련 없는 평화도 전쟁도 상상할 수 없다”고 설파한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혜안이 머리를 스치는 요즘이다.
김희수 건양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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