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철거되고 있는 정훈 시인의 고택. 사진=충청문화역사연구소 신상구 소장 |
정훈 시인의 고택을 사수하려는 대전문인들의 노력이 결국 물거품이 됐다.
지난 7일 대전예총과 대전민예총을 비롯한 지역 10개 문학단체는 고택 사수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대전시와 중구에 철거 반대 진정서를 보내기도 했고 오는 11일에는 긴급간담회를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문인들의 움직임이 시작된 지 단 하루만인 8일 정훈 시인의 고택은 철거됐다.
충청문화역사연구소 신상구 소장에 따르면 8일 오전 대전시 중구 대흥동 50-7번지에 위치한 정훈 시인 고택을 방문했을 때 이미 집의 구조가 무너진 상태로 옛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망연자실한 신 소장은 바로 중도일보를 찾아와 기자와 만났다.
▲불과 어제까지 존재했던 정훈 시인의 고택. 중도일보 DB |
▲철거된 고택을 다녀온 뒤 중도일보에 방문한 신상구 소장. |
“아니, 하루만에 철거가 된거야. 230여명이 서명을 했는데, 이거 다 물거품이지. 매입에 대한 이야기는 3년 전부터 있어 왔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철거될 줄은 다들 몰랐겠지.”
시인 정훈은 충청의 대표적인 향토시인으로 1949년 첫 시집 ‘머들령’을 발간하며 지역의 문학적인 정신적 지주로 활동해왔다. 또 머들령문학회의 탄생을 주도한 문학의 산파이기도 하다.
사실 고택 매입은 3년 전부터 이야기가 돼 왔었고, 결국 지난 6월 인근 노인요양병원에 매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타까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8일 오전 철거되고 있는 정훈 시인의 고택. 사진=충청문화역사연구소 신상구 소장 |
신 소장에 따르면 고택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권득용 대전문인협회장이 고택을 방문해 200여점의 유물을 수습했는데, 관리가 부실했던지 유고에 곰팡이가 피어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인과 지자체, 그리고 언론, 지역민이 외면한 사이 소중한 근대문화유산이 허물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고택은 철거됐고 남은 것은 콘트리트 잿더미 뿐이다.
중구 오류동에 있던 박용래 시인 생가도 공영주차장으로 바뀌면서 표지석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날 무너져버린 고택 현장의 이야기를 전하는 신 소장의 목소리는 떨렸다. “골리앗 같은 몸짓으로 포클레인이 시인의 집을 때려 부수는 거야. 생전 시인이 썼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싯구를 생각하니 포클레인의 무자비한 행위가 너무 슬퍼서… 울컥 눈물이 나더라고.”
정훈 시인의 고택은 영원히 사라졌다. 무참히 무너진 저 고택에서 쓰여진 시들을 읽어봐야겠다. 시마저 사라지게 할 수 없으니… 힘없는 작은 문인들의 노력은 이제부터 비로소 시작돼야 한다. /이해미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