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기억' 중에서 |
▲ 드라마 '기억' 중에서 |
남자도 눈물을 흘릴까? 만약 흘린다면 어느 경우에 어떤 일 때문에 흘리게 될까?
내 나이 40이 넘도록 나는 남자의 눈물을 보지 못했다. 친정 아버지도 그랬고 시아버님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래서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의지하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눈물을 보이지 않는 강인한 버팀목, 그게 남자인줄로만 알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눈물을 보이지 않는 강인한 버팀목이 아니라 여성들이 보듬어주고 감싸 안아 줘야 할 눈물 흘리는 나약한 사람으로…….
최근 들어 남편과 함께 즐겨 시청하는 드라마가 있다.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하는 휴먼드라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사랑놀이나 흥미위주의 소재가 아닌 사람냄새가 폴폴 나는, 현실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다. 출연진 또한 삶의 애환을 몸소 체험한 육,칠십대 연기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재는 삶의 내면을 그린 내용이다. 각본의 진실성과 연기자들의 훌륭한 연기력 때문에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뺄 때가 많다.
이번에 방영된 드라마는 ‘황혼이혼’에 대한 이야기였다. 평생 남편과 자식, 그리고 가정을 위한 자신의 희생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사는 여인의 이야기였다. 영상 속에 전개되는 내용은 같은 여성이란 동질감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의 슬픔을 억제할 수가 없는 그런 내용으로 눈물샘을 자극했고 급기야 ‘훌쩍훌쩍’ 소리를 내며 눈물 범벅이가 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함께 시청하고 있던 남편은 안쓰러웠는지 수건을 가져다 내민다.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남편 또한 충혈된 눈가에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나 못지않게 슬픔을 다스린 흔적이 역력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린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평소 나는 슬프거나 기쁜 감정을 숨김없이 눈물로 표현하기 때문에 눈물이 많다는 소리를 듣는다. 예전엔 남편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짜증스런 목소리로 드라마를 탓하기도 했다. 그가 생각하기엔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스토리로 아줌마들이나 시청하는 질 낮은 드라마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젠 드라마를 함께 시청한다. 어디 그뿐인가 감정 또한 서로 나누며 손수건까지 챙겨주는 그야말로 ‘눈물의 동지’가 되었다. 세월의 탓이랄까? 남자도 갱년기를 지나며 변하는 것일까?
10여 년 전에 방영했던 ‘대조영’ 역시 시청자들의 눈물을 강요하는 드라마였다. 대조영 그는 유난히도 눈물이 많은 영웅이다. 그는 아버지 연개소문이 종처럼 대할 때 그 앞에서 울었고, 생사의 기로에서 만난 어머니 앞에서 울었으며, 아버지 연개소문이 죽기 직전 아버지라 불러보라고 할 때 소리 내며 엉엉 울었다. 그러나 내 남편이 그렇듯이 대조영도 그렇게 나약한 인물이 아니다. 그에게는 불가능이 없었다. 모든 일을 시원하게 해결하는 카리스마적인 인물. 그래서 그의 눈물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국 남자들의 경우에는 눈물을 억제하는 경향이 짙다.
예전 아버지들은 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가장으로서, 권위적인 자리에서 사랑이나 아픔을 표현하고 싶어도 차마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다. 남자들은 어렸을 적부터 어른들에게 울면 안 된다고 들어왔기 때문에 몹시 힘들 때조차 짐짓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은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어떤 보이지 않는 남성 우월주의와 연계된 강박관념의 작용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내면에 흐르는 감정은 男과 女가 크게 다를 바 없는데 말이다.
나는 남편의 잦은 감정표현이 보기에 좋다. 젊었을 때는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그래서 강인하게만 보였던 남편.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슬프거나 감동적인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글을 읽을 때나 음악을 듣거나 뮤지컬을 볼 때도 그렇다. 어떨 땐 감당 못 할 정도로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도 한다. 내 잔소리에도 귀 기울여주는 남편, 그래서 남편과 함께하는 공간이라면 여인들끼리 편안하게 모여 대화 나누는 미장원이나 커피숍, 카페보다 더 편하다.
남성들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40대 초반부터 서서히 남성호르몬이 감소하면서 갱년기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 때문에 남성의 갱년기는 자신들조차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증상이 악화되면 업무를 처리하는데 실수가 잦아지고 삶에 대한 허무감, 공허감이 심해져 가정은 물론, 사회생활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스트레스와 충격이 더해지면 치명적일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린, 21세기에 살고 있다. 남녀평등 시대와 더불어 ‘감정노출’의 평등시대가 도래하고 있어 남자들도 슬프거나 힘들 때 위로받고 싶고, 누군가 자신을 안아 주었으면 하는 나약한 모습을 대부분 보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웃음이 만병통치약이라면, 울음 또한 다를 바 없다. 울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나 후련하고 개운한지를. 마음속에 응어리진 어떤 한이라도 쏟아낸 느낌이다. 진실한 감정에서 우러나는 눈물이야말로 ‘공허함’을 ‘충만함’으로 채워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생의 아름다움과 삶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일 수 있다. 슬픔을 느끼기 때문에 삶의 맛을 알게 되고, 허무함을 알기 때문에 영혼을 채우는 기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여자 또한 남자의 눈물에 더욱 약하다. 여성만의 모성애는 남자를 향한 것이다. 남자여. 여인의 품 안에서 안식하기를 희망한다.
남자들이여! 이제 슬프면 마음 놓고 울어 보세요. 울고 싶으면 눈물샘이 마를 때까지 실컷 울어 보세요.
또 누가 알 수 있나요? 행운의 여신이 사랑의 손길을 내밀지.
/김소영(태민) 시인
▲ 김소영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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