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글족 연예인들의 일상을 다룬 MBC '나혼자 산다' 캡처 |
“1인분은 안 팔아요.” 내가 사는 동네(용두동)엔 오래된 시장이 있다. 예전엔 제법 크고 번성했으나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많이 위축됐다. 그래도 아직은 시장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있을 만한 건 다 있다. 철물점, 떡집, 생선가게, 열쇠집, 한의원, 계란집, 쌀가게 등과 밥집도 골목에 요기조기 들어앉았다. 어쩌다 휴일 그 골목을 지날라치면 구수한 된장찌개냄새 땜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호박, 우렁이, 청양고추를 넣은 된장찌개로 보리밥을 비벼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건만 1인분은 안 판다. 삼계탕집도 있길래 얼마전 삼계탕이 먹고싶어 혹시나 해서 전화 했는데 역시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우이씨! 혼자 사는 사람은 밥도 먹지 말라는 건가.’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싱글’은 아웃사이더다. 그것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싱글’은 갈수록 증가추세에 있다. 현실적으로 결혼하려면 전셋값에서부터 결혼 후에 감당해야 하는 각종 의무와 도리, 육아, 자녀교육비 등으로 스트레스를 겪느니 차라리 혼자 살자는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 특히 여성의 경우 예전엔 결혼은 의무였으나 사회진출이 늘면서 결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선택 사항이 됐다.
그런데 ‘싱글’과 ‘1인 가구’는 또 다르다. 1인가구는 그야말로 온전히 혼자 사는 세대주다.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은 23.9%로 2035년엔 34.3%나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1인가구로 사는 사람은 그 이유도 다양하다. 결혼하지 못한 노처녀 노총각, 돌아온 싱글,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자식들과 떨어져 사는 독거노인 등 어떤 확고한 신념 같은 게 있어서 혼자 사는 건 아니다. 어찌어찌하다 결혼 못한 거고 어찌어찌하다 이혼을 하게 되고 어찌어찌하다 그렇게 혼자 살게 되는 거 아닌가.
각자의 삶은 다 이유가 있고 100% 완벽한 인생은 없다. 싱글이든 더블이든 장단점은 있다. 자유롭고 외로운 삶이냐, 구속당하고 안정된 삶이냐의 문제다. 아주 가끔 대학 친구들과 만나곤 했는데 나 혼자만 싱글이다. 친구들은 아들을 군대에 보냈거나 대학생이거나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식들을 두고 있다. 만나면 아이들 얘기가 주를 이룬다. 그러면 나 혼자 겉돌게 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서로 관심사가 다르다 보니 지금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만나는 걸 꺼리게 됐다.
▲ 사진=연합DB |
이젠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知天命)’ 나이가 되다보니 한없이 편하고 자유로운 1인 가구의 삶을 만끽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에 부대끼며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했던 30 전후엔 불안과 외로움이 교차하던 시기였다. 뼛속 깊이 고립감에 시달리던 어느 해 늦가을을 생각하면 지금도 진저리가 쳐진다. 그때 허름한 다세대주택에 살았는데 밤에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왔다가, 바로 옆 아파트의 어느 집에서 흘러나오는 환한 불빛을 멍하니 보며 외로움이 사무쳐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난 저 세계로 들어갈 수 없는 건가?’
전설적인 이탈리아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는 산에 오르며 고독이 더 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는 오랫동안 다져진 맷집 없이는 불가능하다. 무리를 떠나서 살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의존감이 큰 사람에겐 그것이 형벌과 같을 수 있다. 허나 오직 혼자일 때만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걸 혼자 살아본 사람은 안다. 지그문트 바우만도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 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고 했다.
그렇다고 1인 가구의 삶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서 사소한 것들에 대한 불안감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시작한 거다. 집에서 화장실에 볼일 보러 갈 때 종종 휴대폰을 들고 들어간다. 문이 잠겨 나올 수 없는 상상을 하면 공포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안에서 문을 부수고 나올 수 있을까, 오랫동안 갇혀 결국 죽게 되는 건 아닐까…. 자유롭고 편한 혼자만의 삶을 언제까지 만끽할 수 없다는 걸 이제 안다.경제적인 문제든 질병의 문제든 육신의 노화와 쇠약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나의 근원적인 두려움은 커질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표 독거스타 주연(김혜수)처럼 ‘굿바이 싱글’은 상상하기 어렵다. 타인의 간섭은 딱 질색이다. 맞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점 부인하지 않겠다. 오랫동안 혼자 살다 보니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어쩔 것인가. 나른한 휴일 한 낮, 매콤새콤한 비빔국수 배터지게 때려먹고 거실에 큰 대자로 누워 TV 소리 자장가 삼아 늘어지게 낮잠 자는 독거인생이 아직은 미치도록 좋으니 말이다.
우난순 지방교열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