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손쉽게 먹거리를 확보하고 타 지역으로 수월한 이동 등을 위해 강가에 집단거주하며 문명의 싹을 틔웠다.
이후 근세기까지 인류는 서로 필요한 것을 위해 활발한 물물교환을 해 왔다. 물물교환은 화폐가 발달한 21세기에도 인터넷 등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국은 조선시대에 와서 물물교환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그 교환의 주역이었던 이들을 우리는 보부상이라 했다.
▲보부상이란=보부상은 일정 지역에 정착하거나 거주하지 않고 행상의 형태로 지방장시를 돌아다니며 봇짐과 등짐으로 장사하는 이들이었다. 구체적으로 부피가 작고 가벼우며 특정지역의 물품내지는 비교적 값진 물건인 직물, 귀금속류, 잡화가 주종인 상인들은 '보상', 어물, 소금, 토기 등 무겁고 부피가 큰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들은 '부상'으로 불렸다. 이들의 역사는 인류문명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한반도에서는 신라시대부터 기록이 존재한다.
▲하나의 정부조직 … 임진왜란도 참여=조선 태조 때는 부상임방(負商 任房)의 설치, 부상청에 독점 매매권의 부여 등 보부상에 대한 관심이 각별했다.
또 상리국(商理局), 상무사(商 社) 등으로 이어지는 정부조직을 두는 등 조선시대의 보부상은 전통적 행상과 근대적 상인을 연결하는 과도기적 모습과 함께 농민반란의 진압이나 임진왜란에 참여하는 등의 정치적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규율이 엄격했던 보부상=보부상들은 도(道理)와 예(禮意)를 근간으로 하는 그들만의 계율을 만들어 강령으로 삼았다. 1851년 하달된 완문을 토대로 예산보부상단 본부임방이 작성한 '보부상이 영원히 준수해야 할 행동강령'을 보면, 불효하는 자는 볼기 50대, 선생에게 잘못하는 자 볼기 40대, 물건을 강매하는 자·동료 간에 행패하는 자·언어가 불순한자 볼기 30대, 어른을 능멸하는 자 볼기 25대 등의 처벌과 초상 시에 조직의 직위에 따라 다르게 정한 부의금액 등이 적혀있다. 이러한 계율은 사회전체의 안녕과 질서유지에도 기여했다.
▲보부상의 다양한 역할=보부상들은 물건을 이고지고 장시를 돌아다니며 팔고 사는 일이 주업이었으나 소문을 듣게 되고 소문(정보)을 이동시켰으며 돈(자금)을 유통시키는 역할을 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인터넷과 같은 망으로 정보의 이동과 자금을 유통하는 등의 기능도 한 셈이다. 그러나 보부상은 일제 강점기에 탄압 당하고 서서히 소멸의 길을 걸었다.
▲충남의 보부상=충남지역에서의 보부상은 해상과 육상의 교통이 편리해 물류이동이 수월했던 예산·덕산의 내포지역과 부여 홍산, 서산 등의 저산팔읍 등에서 활동이 왕성했다. 전국적으로도 충남의 보부상들은 활동이 특히 두드러졌다. 현재 보부상의 전수와 이수, 그리고 유물이 보전되는 유물관이 있는 곳은 예덕상무사 뿐이며 부여 홍산 보부상 유물은 부여박물관에 일부가 보존됐다. 보부상들은 장마당에서 물건을 파는 일뿐만 아니라 사람을 모으고 함께 놀이 하며 흥과 분위기를 돋우기도 했다.
▲보부상 문화의 전수=충남문화재단은 보부상의 길놀이와 죽방놀이 등 장마당놀이를 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기도 한 충남문화재단의 이런 활동은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문화의 맥을 잇고, 위축되는 전통시장을 살리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부여=유희성 기자 jdyhs@ 도움말=충남문화재단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