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춘추] 손해보며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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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춘추] 손해보며 살기

  • 승인 2016-06-29 14:01
  • 신문게재 2016-06-30 22면
  • 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 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 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돌아가신 아버지는 생전에 '조금 손해 보며 살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말에 담겨 있는 아버지 세대의 삶의 지혜를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사소한 이득을 위해 다투기보단 양보하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러한 삶의 태도는 언젠가 더 좋은 일로 보답 받는다는 믿음 때문 일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2015년 고소·고발건수는 51만 건으로 일본의 60배에 달하며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제도적인 문제도 있지만 조금도 손해 보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 국민의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며, 커다란 사회적 병폐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손해 보며 살자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태도 또는 전략으로서 내게 각인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학생들과 상담을 할 때 지금 조금 손해 보는 것이 결코 손해 보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언젠가 보상받는 것이라는 인생철학(?)을 설파할 때가 많았다. 물론 그 말에는 사람과의 관계측면에서 '손해'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도 있지만, 눈앞의 이득에 현혹되지 말고 좀 더 장기적인 목표에 투자하라는 뜻도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학생들을 대할 때 더 이상 '손해 보며 살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서울 지하철 구의역의 스크린 도어사건과 같은 소식들을 반복해서 접하게 되면서 부터다. 이러한 사건의 배후에 힘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부당한 처우와 위험을 강요하는 대가로 얻은 이익을 향유해온 몰염치한 메피아의 현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특혜가 분명한 서울메트로의 외주회사와 메피아처럼 부적절한 관계가 사회 도처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네이쳐리퍼블릭 대표와 판검사출신 변호사들이 벌인 추악한 뒷거래가 전관예우라는 관행 속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실을 마주 대하게 된다. 대우조선에서 수많은 노동자와 직원이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직장을 잃고 눈물을 흘리게 된 배경에는 부도덕한 경영자와 직원의 횡령, 배임이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과연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학생들에게 젊음과 열정만으로 현실의 부당한 손해를 감수하고 나간다면 반드시 꿈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의 손해를 참고 받아들이면서 현실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보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배신당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청년들의 열정페이라는 말도 그러한 배신을 거듭 당한 경험 끝에 나온 말이다.

아마도 한 개인의 철학으로서 '손해 보며 살기'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한 사회 안에서 그러한 철학을 지닌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것이 그 사회의 암묵적인 규범으로 작동할 때 그 사회는 건강해지고 발전해나갈 것이다. 그런데 그 철학 또는 믿음을 지켜 주어야 할 우선적인 책임은 정치가에게 있다.

정치가는 국민을 잘 먹고 잘살게 하는 소명이 있지만, 무엇보다 '자본'의 속성과 위험성을 이해하고, 그로 인한 구조적인 모순으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즉 우리나라는 굴곡이 많은 현대사를 거치며 민주주의 기초를 다지고 다원주의 사회를 지향하고 있지만, 자본 또는 자본가가 다원주의의 정치과정을 지배하면서 사회적 불평등과 모순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사회 일반의 도덕을 이끌어 가는 정치인의 청렴이 아닐까. 즉 다원주의 사회를 이루는 당연한 전제조건으로서 사회 내 여러 집단 간의 동등성이 자본의 지배로 인해 깨지게 되면 메피아나 전관변호사, 옥시나 네이쳐리퍼블릭 경영진과 같은 윤리성을 상실한 이해집단이 '손해 보는 삶'의 철학을 위협한다. 이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면서 일반국민들은 은연중 '양보하고 가만있으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과감히 개혁하기 보다는 스스로 기득권에 편승할 때 미래는 더욱 암울해진다.

아마 나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손해 보며 살도록 조언하겠지만, 손해 보는 삶이 더 큰 이득과 존경으로 보답 받게 되는 직업은 바로 정치인이 아닐까.

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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