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할아버지’ 시인의 사부곡

  • 사회/교육
  • 미담

‘빨간 할아버지’ 시인의 사부곡

  • 승인 2016-06-27 17:12
  • 신문게재 2016-06-27 21면
  • 김민영 기자김민영 기자

“암 투병 이야기로 환우에 위로와 용기 전하고 싶어”

아내 및 본인 암투병 담은 시집 병원에 기증

“이 시집을 통해 각종 암으로 투병 중인 수많은 환우, 그리고 함께 가슴앓이 하는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위로와 용기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암 투병중인 노(老) 시인이 환우들과 희망을 나누기 위해 아내와 자신의 투병 이야기를 담은 시집을 펴내 병원에 기증했다.

2002년 암선고를 받은 한정민(72) 씨의 아내는 처음 찾아간 병원에서‘치료불가’라는 말과 함께 서울의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한 씨는 당시 부쩍 늘은 아내의 기침소리에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하고 함께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여전히 깊은 슬픔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식 걱정이 늘 먼저였던 집사람은 병원을 가자고 해도 한사코 괜찮다고만 했어요. 그러다 아들 녀석이 갑자기 병원신세를 지게 돼 부리나케 병원에 달려갔다가, 이때다 싶어 아내도 검사를 받게 했죠. 그런데 의사가 검사결과를 보더니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며 집에 가지 말고 기다리라더군요.”

폐암 말기에 발견돼 3년 가까이 암과 싸우던 한 씨의 아내는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로도 낫지 않고 병세가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머무는 기간이 적지 않았다.

매일 하루 두 번, 정해진 시간에 만날 수 있던 아내는 어느 날부터 한 씨가 찾아와도 두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한 씨는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도 곱기만 하던 아내의 얼굴이 뼈만 남아 앙상해져 있을 때 아내가 떠나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한 씨에게 오지 않았으면 싶던‘내일’이 끝내 찾아 왔다.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게 한 씨와 아들이 함께 지켰다.

떠난 아내의 흔적을 정리하던 한 씨는 생전에 한 씨가 아내에게 선물했던 ‘빨간 등산복’만큼은 태우지 못했다. 함께 손잡고 산을 오르던 밝은 아내를 추억하기 위해 남긴 등산복은 한 씨가 지금까지 가장 즐겨 입는 옷이다. 때문에 손주들은 한 씨를 ‘빨간 할아버지’라 부른다.

떠나간 아내를 그리워하던 한 씨는 지긋지긋한 ‘암’의 부름에 또 한 번 절망을 겪고 있다. 이번에는 한 씨가 ‘방광암’ 진단을 받았다.

한 씨가 병원에서 방광암 시술을 받은지 올해로 3년, 다행히 재발 소식이 없이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 아직 2년은 더 지켜봐야하는 암이란 녀석이 지겨워 “내 나이가 벌써 일흔이 넘었는데, 차라리 아내 곁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한 씨의 입가에 애잔함이 묻어있다.

한 씨는 지난 2014년 아내의 투병을 도우며 쓴 시집 ‘먼훗날’을 기증한데 이어 이제는 본인 스스로가 암투병 중 느낀 두려움과 고통, 희망을 담은 시집 ‘병상일기‘를 최근 출간해 을지대학교병원에 100권을 기증했다.

황인택 을지대병원장은 “암투병 중 틈틈이 써내려간 이번 시집의 모든 작품들에는 담당의와의 신뢰를 통해 병마와 싸우며 희망을 찾아가는 고된 과정이 세세히 그려져있다”며 “모든 환자분들이 이 시를 읽고 용기와 희망을 찾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minyeong@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2.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3.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4. 세종시 50대 공직자 잇따라 실신...연말 과로 추정
  5. 천안시의회 김영한 의원, '천안시 국가유공자 등 우선주차구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상임위 통과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대전시노인복지관협회 종사자 역량강화 워크숍
  3.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4. [취임 100일 인터뷰] 황창선 대전경찰청장 "대전도 경무관급 서장 필요…신종범죄 강력 대응할 것"
  5.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