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훈 한남대 총장 |
컴퓨터 기술과 인터넷 속도의 급진적인 발전이 가져온 글로벌 시대에 대학은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인재, 어떤 인물상을 키워야 할 것인가?
첫째, 나와 전혀 다른 것도 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 '이중성의 포용'은 피부, 국적, 지식, 문화, 학력 등등이 전혀 다른 지구 반대편 사람과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같이 살아야 하는 글로벌 시대의 아주 중요한 덕목이다. 요즘 '인성교육'이 다시 중요하게 이야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 인성이 옛날의 '말 잘 듣고', '모범적인 생활'을 강조하는 인성과는 달라야 한다. 글로벌 시대의 인성은 나와 다른 것을 포용하고, 존중하고, 일체감을 높이는 인성이어야 한다.
둘째, 협력 또는 협업의 능력을 길러주고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혁신'을 강조하는 산업혁명 이후의 교육은 몇몇 능력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소위 SKY 대학에 가기 위해 학원에서 밤샘 공부를 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 교육은 내가 SKY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친구를 떨어트려야 하는 '경쟁 정글'을 만들었다. 그 결과 협력이나 협업을 위한 포용성이나 관계성을 발달시키지 못했다. 해외 우수 연구자가 한국에 와서 2년을 버티지 못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거나, 유학 중인 우수 인재가 한국에 돌아오기 보다는 유학 간 나라에서 일하고 있다는 기사들은 협력이나 협업을 하지 못하는 우리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가 경제 발전을 하지 못하고 경제 침체 속에 빠져 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글로벌 시대의 가치 창조를 위한 협력이나 협업의 중요성과 그 방법을 교육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사유의 유연성을 길러주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도 지구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는 지구의 모든 것을 접하거나 지구적 차원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생긴다. 그 때 사고의 유연성을 갖지 못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범주 안에서만 이해하거나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 세계 안에서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게 되고 글로벌 시대에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대를 살기 위해서는 내 세계의 경계선을 허물어야 하는 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유의 유연성을 길러야만 한다. 이제 대학은 교수 중심, 지식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중심, 토론식 수업 모형을 선택하여야 하며 SNS나 하이포털과 같은 매개를 이용해 대단위 학생과 학생, 교수자와 학생 간 끊임없이 교통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교통의 과정과 결과에서 새로운 가치와 재물들을 생산할 수 있다.
넷째,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 죽어라 책만 파면 성공할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났다. 책 속에는 한정된 지식과 과거만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가 쓴 책이라 하더라도 책의 용량 이상의 지식을 담을 수 없으며, 책으로 출판되는 순간 그 지식은 과거가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인터넷 안의 지식은 무궁무진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감성들이 창출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시대의 인재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탐구하여야 하며 지구 반대편의 전혀 다른 인종과 문화에 대해서도 열정적인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전지구적인 인재가 될 수 있다.
글로벌 시대 대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디지털 환경에서 끊임없이 창조되는 다양한 문화와 가치들을 유연성 있게 받아들이고 문화적 배경이 다른 외국인과 협업하여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자 사명이 되었다. 이제 인류의 역사는 '디지털 시대 이전의 인류 역사와 디지털 시대 이후의 인류 역사'로 양분될 것이다. 새로운 인류 역사를 위해, 대학은 전혀 다른 문화와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자연 스럽게 교류하며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여 자발적으로 지구적 능력을 갖추고 공헌할 수 있는 글로벌 리더를 육성하기 위해 더욱 고민해야 한다.
이덕훈 한남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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