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
10년도 훨씬 더 된 얘기다. 끼니때가 되어 한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탓에 어디나 맛이 같은 라면을 주문했다. 이때 주고받은 단문의 대화들. '그냥라면' 하나 주세요. '그냥라면'은 없어요. 왜죠? '떡라면'과 '만두라면'밖엔 없어요. 그럼 떡도 만두도 넣지 말고 끓여주세요. 그런 건 없다니까요. 돈은 더 낼 테니까 그냥 끓여주세요. 안 되니까 다른 거 시키세요. 집에서는 곧잘 넣어 먹는데, 왠지 그 날은 떡도 만두도 당기지 않았던 것. 이때 누군가 옆에서 한 마디 한다. “장사 정말 잘하네.” 한데, 정말 그 음식점이 장사를 잘하는 것일까.
최근의 경험이다. 옆 사무실 두 직원과 함께 전국 체인망을 거느린 ㄴ부대찌개 집에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늘 그러는 대로 라면 사리 하나를 넣어 달라 했는데, 대개 1000원을 받는 그 값이 2000원이었다. 까닭을 물으니 본사에서 부대찌개용으로 특별히 만든 것이란다. 그러면서 하는 종업원의 대답에 우리는 아연실색했다. “그 대신 밥은 서비스입니다.” ?? 밥을 먹으러 왔는데, 정작 그 밥이 서비스라니! 게다가 찌개 속의 라면 맛은 일반 라면 맛과 도긴개긴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누구는 사업 참 잘한다고 칭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인가.
먹는 일이 우리의 으뜸 일상이어선지 유독 먹거리를 둘러싼 편법과 꼼수들이 쉬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편법과 꼼수들의 상당수를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귀찮아서인지 좋은 게 좋아서인지 짐짓 퉁치고 넘어간다. 돼지갈비 일인분에 정작 갈빗살은 한 조각밖에 안 들어 있고, 추가로 주문하면 아예 없을 때도 있다. 도가니탕에 도가니 대신 힘줄만 가득하고, 어느 유명한 추어탕 집은 고등어살을 곱게 갈아 섞는다. 김치 만두인 줄 알고 시킨 만두가 고춧가루 만두였던 곳도 역시 이름 난 한 만두집이었다. 반찬 재활용 논란은 언제나 끝날 수 있을까.
지난 3월 프로기사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다섯 차례의 바둑 대결을 할 즈음이다. 택시를 타고 귀가하며 기사와 몇 마디 나누던 중 기사가 그랬다. 우리 정치를 알파고한테 맡기면 좋지 않겠느냐고. 맞장구를 치고는 이런 저런 말을 더 듣는데, 다시 기사가 그랬다. 알파고한테 맡기면 안 되겠습니다. 알파고는 사람들이 둔 모든 수들을 다 기억했다가 이기는 수만을 골라 쓴다면서요? 그러면 옳고 그름은 하나도 안 따진 채 이기려만 들 게 아닙니까? 안 되겠네요. 이 말이 진짜 맞는 것 같아 크게 웃었다. 알파고에게는 윤리라는 게 없음을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빨리만 간다고 운전을 잘 한다거나 이익만 더 낸다고 사업을 잘 한다고 할 수 없다. 이른바 법으로 걸 수 없다고 다 바른 것이 아니다. 요즘 즐겨 보는 프로야구 경기에서는 잘 맞은 타구가 수비수에 잡히기도 하고 빗맞은 타구가 승리 타점이 되기도 한다. 언뜻 불합리해 보인다. 하지만 길게 보면 정확히 잘 친 타구가 빠르고도 멀리 날아가 안타나 홈런이 될 확률이 훨씬 더 크다. 장삿속과 경영 마인드는 다르다. 남들보다 무조건 앞서는 것이, 남들보다 무조건 돈을 더 버는 것이 다 능력은 아니다. 바른 것은 하는 것이 능력이고, 바르지 않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 능력이다.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