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단 “근대 문학 산실로 보존해야 해”
▲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고 정훈 시인의 자택 측면. |
고 정훈 시인의 생전 자택이 최근 지역 요양병원에 의해 매각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 근대문학의 산실로 이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일 오전 찾아간 대전 중구 대흥동 50-7번지 혜남한약방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인근에 지어진 신축 모텔 건물 사이 자리한 허름한 한약방 뒤로 안채가 보였다. 근대 일본식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안채는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고 정훈(1911-1992) 시인이 살던 자택으로 지역 문인들의 사랑방이자 공부방이었다. 정훈 시인이 타계한 후 장남 고 정심 시인이 머물며 한약방과 함께 문학 활동을 이어갔지만 20여년 전 작고한 뒤부턴 차남 정병선(66)씨가 돌보고 있다.
차남 병선 씨에 따르면 과거 이곳에선 박용래 시인을 비롯한 지역의 젊은 시인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정 씨는 “자유분방하셨던 아버지가 자주 문인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고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시인은 생전 이곳에서 박용래, 이재복, 성석홍 시인 등과 함께 문예지 ‘향토’, ‘동백’을 만들었다.
이후 2013년께 차남 병선 씨가 이곳을 매각할 의사를 밝혔고 최근 인근 요양병원에서 매입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계약 후 계약금까지 건네받은 시점에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졌고 지역 문단에서는 두고볼 수만은 없다고 두 팔을 걷고 나섰다.
권득용 한국문인협회 대전지회장은 이날 오전 대전시 도시재생본부와 중구청을 방문해 고 정훈 시인의 자택을 문학 투어의 요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권 회장은 “오류동에 있는 박용래 시인 자택 부지가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정훈 시인의 집마저 그냥 멸실되게 둘 순 없다”며 “충청시단의 선구자인 정훈 시인의 집은 개인의 자택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어 “시ㆍ구청과 대전문화재단이 나서서 문화적 가치를 이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헌오 전 대전문학관장은 “문인의 유적과 전형적인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정훈 선생의 자택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화려하진 않지만 깊은 뜻이 있는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단계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임효인 기자 hyo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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