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
1997년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를 맞게 된다. 국가의 존망이 달렸다. 이때 많은 기업들이 외국회사에게 팔려나갔다. 이 중에는 알짜기업도 있었고 또한 생활과 밀접한 품목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이 외국기업들이 대한민국 국민을 얼마나 진솔하게 생각하면서 제품을 만들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번 사태를 보더라도 자기 회사의 이익만을 위해 공업용으로 사용되는 카페트 세척용 화학물질을 용도변경 없이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한 부도덕한 행위가 핵심 문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당시 화학물질에 대한 측정판단 기준을 정하는 제도가 미흡했고,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규제 기준이 다른 점도 많았다.
2011년이 되어서야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문제가 불거지자 환경부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소위 화평법 제정을 추진했다. 가습기 살균제 등 생활용품에 쓰이는 화학물질이 유해한지 아닌지 여부를 사전에 검증하겠다는 취지다. 이 화평법이 국회를 통과한 때가 2년 후인 2013년 4월이고, 이후에도 화학성분 전체를 공개하는 정보공유 조항이 기업 비밀의 침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정부와 재계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으며 많이 희석되었다. 결국 이런 안이하고 무책임한 자세가 대형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생활안전과 식품안전은 더욱 엄격하고 정밀하게 기준을 만들어서 철저히 검사하고 인증해야 한다.
필자는 우리나라 대표적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의 이사로서, 또 거기서 발간하는 소비자리포트 잡지의 편집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 국내에서 판매되는 7개 회사의 섬유유연제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 미국회사에서 판매하는 유명 제품에서 방부제 성분이 검출됐다. 그 당시 난리가 났다.
문제가 된 화학물질은 환경부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유독물로 관리되고 있다. 또 농식품부는 구제역 발생 시 소독제로 사용하면서 발암물질 논란을 일으키자 생체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공산품 안전 업무를 관장하는 산자부 산하 기술표준원은 섬유유연제의 유해물질 관리대상에 이 물질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허용 기준도 없다. 과거 섬유유연제의 유해물질 규제 기준을 만들 때 이 물질을 사용한 제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성물질이지만 제조업체가 섬유유연제에 넣어도 규정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셈이다. 제품 안전관리에 구멍이 뻥 뚫려 있다. 옥시 사태는 소비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생활용품에 대한 안전성 검사에 유독 한국이 관대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점을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알려서 소비자들이 잘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업체들은 기업 윤리관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윤을 얼마나 많이 남기냐 하는 것이 기업목표였다면, 앞으로는 지구환경과 소비자의 안전, 그리고 나아가 인류의 삶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최근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이 글로벌 메가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지향해야만 인류와 지구가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스테이너블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앞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삶의 질 향상 요구가 커질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소비자단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미국은 컨슈머리포트라는 소비자잡지가 시사잡지인 타임보다 영향력이 더 크다. 정부나 지자체가 할 수 없는 소비자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여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소비자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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