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 "거기만 자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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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 "거기만 자르면 됩니다"

  • 승인 2016-06-15 14:46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초등학교 5학년때 신체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1년에 한번씩 키, 몸무게, 앉은키, 가슴둘레 등 기초발달상황을 학교 전체적으로 교실에서 검사하는 행사였다. 남자 아이들은 웃통을 벗고 여자아이들은 메리야스만 입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순서대로 교실을 이동해가며 체크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옆반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옆반 선생님은 앉은 키 담당이었는데 우리반 한 여자애에게 메리야스를 벗으라고 한 것이었다.

그 아이는 수치심에 어쩔 줄 몰라하며 손으로 가슴을 가리기에 바빴고 그 선생님은 손을 내리라고 하고 있었다. 남자 아이들은 신나게 떠들어대며 탄성을 질렀다. “와! 쟤 젖 무지하게 크다.” 그 아이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체격이 크고 발육상태가 빨라 벌써 가슴이 봉긋하게 나와 있었다. 보다못한 몇몇 여자애들이 또다른 남자선생님한테 얘기했다. 그 선생님은 얼굴이 벌개져서 “그거 미친놈 아냐”라며 옆반으로 달려갔다.

도처에 성폭력은 일상화되어 있다. 학교, 회사, 군대, 종교계 등 우리사회에서 약자인 여성은 24시간 위협에 노출돼 있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며 그 수가 엄청나게 많다.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거의 남성이긴 해도 모든 남성이 폭력적이란 말은 아니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갈수록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 유행병처럼 만연해지고 있다. 이제 여성들은 밤길을 혼자 걸을 때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발바리 성폭행범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남성과 같은 인간으로서 왜 여성은 겁에 질린 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아야 하는 사회가 됐을까.

많은 여성들이 때때로 여자라는 이유로 치욕감을 맛보는 경험을 한다. 그 경험은 사소할 수도, 잔인한 폭력과 함께 강간당하는 경험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다. 남성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수시로 여성들에게 성희롱적 발언을 지껄이거나 완력으로 여자를 ‘정복’하는 걸 남자다움의 행동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사진=tvN 시그널
▲사진=tvN 시그널

어쨌거나 인류문명이 진보하면서 여성들의 의식도 높아져 남성들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위기의식을 느낀 남성들은 더 견고하게 여성들을 지배하려는 전략으로서의 성폭력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게 됐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을 하나의 종속물로 여기는 처사다. 검사 출신이라는, 얼마전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된 두테르테의 발언은 남성우월주의가 성을 담보로 어떻게 표출되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성폭행 피살 여성을 두고 “그는 너무 예뻤다. 내가 먼저 강간했어야 했는데”라는 끔찍한 농담을 해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성폭력이라고 말해지는 것들은 여성들이 사소하게 경험하는 것들이 하도 많아 그것이 문제가 되는 지를 미처 인지하지 못하거나 알고도 침묵으로 일관하기 일쑤다. 그러나 전쟁 시 피점령지 여성들에 대한 집단 성폭력은 너무 잔인해 결코 사소하게 넘길 수 없는 역사적인 상흔을 남긴다. 여성의 몸은 전시에 전리품으로 여겨져, 집단강간은 남성들 간의 소유권분쟁으로 간주된다.

난징 대학살, 일본의 대동아전쟁, 유고 내전, 아프리카 내전 등에서 군인들은 많은 여성을 잔혹하게 강간했다. 전쟁시 집단강간은 이성을 잃은 병사들이 벌이는 돌발적인 개별 행동이 아니라 상부의 명령에 의해 조직적으로 행해진다. 여성을 성폭행하는 것은 그 여성을 소유한 남성을 모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쟁시 집단강간은 상대 집단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궁극의 승리’를 의미한다.

어제는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오늘은 미 스탠퍼드 수영선수 성폭행, 내일은? 모레는? 날마다 터져나오는 게 성폭행 사건이다 보니 이건 뭐 남자들이 강간 못해서 환장한 발정난 수캐처럼 보일 지경이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들은 언제까지 남성들의 성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살아야 하나. 정신분석의들은 이 문제에 대해 암울한 진단을 내놓는다. “성폭력은 예방할 수 없는 인간사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말이다.

하긴 거센 항의와 비난에도 사과는 커녕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두테르테나, 몇 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억울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윤창중이나, 증거가 뻔히 드러나는 데도 공모한 일은 없다는 섬마을 세 남자나, 거짓진술하기 바쁜 미 수영선수의 반성없는 기미를 보면 안타깝지만 위의 주장을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배운 놈이나 못 배운 놈이나 그저….

밤꽃 향기가 온 세상에 진동한다. 진한 밤꽃 향기에 취하는 6월이 오면 설렌다. 휴가를 떠나는 계절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코끝을 간질이는 그 향기에서 역한 냄새가 난다. 퍼뜩 떠오르는 게 있다. 대학시절 학원 다닐 때 깐돌이 같은 강사가 수업이 끝난 후 강간범에 대한 처방법을 간단명료하게 말하고 강의실을 휙 나갔다. “거기만 자르면 됩니다!”

우난순 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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