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벌어지지 않았어야 좋을 일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고, 아무 상관도 없이 죽게 된 그 여성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또 정신질환자가…', '묻지마 살인', '여성 혐오' 같이 귀에 쏙 들어오는 단어들로 이 사건을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영 불편하고 미진한 마음이다.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신질환이 입에 오르내린다. 인간의 본질이 정신에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정신질환이 거론되었다 하면 모든 책임을 그리 몰아버리고 일축해버리는 것은 문제다. 조현병만 해도 약 1%의 사람들이 앓고 있으니 환자의 가족까지 보태면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뒤따라오는 소외와 차별로 또 고통을 겪을 것이다.
정신보건법이 1995년에 제정되고 이후 정신보건발전계획이 수립되기를 반복해오는 동안 계속 이어진 목표중의 하나가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과 편견 타파였다. 그래서 나름 홍보도 하고 사업도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에 쉽지 않다. 게다가 이런 사건이라도 발생하고 나면 조금 나아졌던 인식도 다시 엉망이 되고 만다. 사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더 높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 자기와 다른 부류, 다른 세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경계를 지어야 조금이라도 덜 불안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정신질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절대로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자신할 수도 없는 채 같은 범주안에서 이렇게 저렇게 어울려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 점에서 피의자도 사건전에는 정신장애와 관련해 '무시'를 당하는 약자였으리라는 생각해보자. 피해 여성에게 직접 무시당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많이 무시 당하며 살았을 것이다. 아니면 증상으로 인해 무시 당한다고 잘못 인식하며 지냈을 수도 있다. 무시당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고, 업신여김이나 깔봄을 당한다는 뜻인데, 이런 경우 적당하게 자기 기분을 잘 표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속으로 벼르다가 후일에 멋진 성취로 되갚아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 채 좌절하고 내적으로 화를 쌓는 사람도 있다. 자기 개념이 부정적인 사람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오래도록 눌리고 쌓이다 보면 분노 폭발로 이어질 수 있고 더욱이 엉뚱하게 터질 수 있다. 그래서 존속살인이나 상해처럼 말도 안되는 사건의 저변에 깔린 이유가 되기도 하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행동의 방아쇠가 되기도 하지 않는가. 자동차 경적을 울렸다고, 차 앞에 끼어들기를 했다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어쩌면 이와 관련있을 수 있다. 특히 사고장애 같은 증상이나 왜곡된 인지체계가 맛물리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어째도 남을 해치거나 죽이는 일에 변명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도처에 분노 폭발의 위험성이 날을 세우고 있는 이런 일상적 환경에서 우리는 무엇을 조심하며 살아야 할까. 더욱 여성이나 아동처럼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은 표적이 되기 쉽다는 것을 이번 사건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가해자도 피해자도 약자, 우리는 온통 약자들의 세상을 사는가 보다.
요즘 대학 주변을 순찰하는 경찰차를 자주 본다. 잠시 잠깐의 가시적인 노력이 아니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 각자 있는 곳에서 안전한 사회를 위해 근본적으로 어떤 부분에 기여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자.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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