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찾아 南으로 온 젊은 화가 “내 삶을 찾고 싶어 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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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찾아 南으로 온 젊은 화가 “내 삶을 찾고 싶어 탈북”

원하는 미술 위해 결심 "탈북민 바라보는 편견·차별 없어져야"

  • 승인 2016-06-12 17:02
  • 신문게재 2016-06-12 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북한이탈주민 오성철 작가를 만나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지난 10일 오후 4시 대덕구 한 사무실.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오성철(39)씨가 인사를 건넸다. 낮지만 부드러운 목소리, 얼굴엔 옅은 미소를 띈 채였다.

무슨 인사말을 건네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던 기자와는 달랐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니지만 탈북민은 처음이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그의 반가운 인사에 끙끙 앓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오씨를 ‘탈북자’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게 느껴져서다. 그도 같은 말을 하는 형제이자, 대한민국 시민인데도 말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오씨와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았다. 날씨 같은 별 시덥잖은 주변 이야기를 한 뒤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무슨 연유로 탈북을 결심하신 거죠?”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침내 그가 입을 뗐다.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내 삶을 찾고 싶어서 남으로 왔지….”

오씨의 고향은 평안남도 남포시. 평범하게 자라다 1994년 군에 입대했다. 소속은 조선인민경비대 선동선전부 직관원. 그의 업무는 중앙당에서 내려오는 홍보포스터를 베껴 그린 뒤 동네에 부착하는 일이었다.

2003년 제대할 때까지 당의 문구나 포스터를 수도 없이 보고 베끼고, 따라 그렸다. 시키는 대로 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국가가 원하는, 그리라는 그림만 그릴 수밖에 없었고, 이 그림에는 제 가치관이나 이념 등은 배제된 채 국가의 사상만이 담겨있죠.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그리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그는 제대 후 온천제염단과대학 공학과에 진학했다. 원했다기보다는 졸업장이 필요해서였다. 이때 접한 인문학, 특히 철학은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누구인지, 국가는 무엇인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묻기 시작했다. 졸업 후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던 오씨는 2007년 탈북을 결심한다. 그에겐 몸과 생각이 자유로운 삶이 간절했다.

그러나 탈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한동안 중국에서 머물러야했다. 그의 하루하루는 기약 없는 바람과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흔들리는 오씨의 마음을 다잡아준 건 그림이었다.

자신의 기분을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데생과 스케치 연습을 꾸준히 했다. 당의 지시가 아닌 나의 의지로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기를 5년, 오씨는 2012년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사람들은 번듯한 아파트에 살면서 좋은 차를 끌고 다녔다. 음식은 다양했고, 부족함 없이 먹는 것 같았다. 자유가 느껴졌다. 바랬던 꿈들이 금방 현실로 다가올 것 같았다.

원하는 그림을 그리며 북한 미술을 공부해 논문도 내고, 발표도 하는 꿈 말이다. 하지만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그의 꿈을 가로막았다. 어딜 가든, 누구를 만나든 보이지 않는 차별에 점점 지쳐갔다.

“처음에는 북한보다 생활수준이 높고 자유까지 있었으니 되게 좋았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우리 사회의 현실이 보였어요. 탈북자라는 이유로 받는 편견과 차별,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와 닿더라고요.”

그러나 오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열 살 넘게 어린 동생들과 함께 대학(한남대 회화과)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리고 어느덧 졸업반이 되었다. 작품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삶의 본질’을 주제로 몇 차례 개인전도 열고, 아트페어에도 참가했다. 8월에는 미국 마이애미에서 박민규 화가와 함께 특별전시도 열 예정이다. 주제는 ‘남북한 화가들이 던지는 평화의 메시지’다. 그는 헤어지기 전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우리들도 가치관과 생각이 있어요. 무작정 가르치고 주입시킬 게 아니라 입장을 바꿔 우리가 느끼는 이 사회에 대한 생각을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통일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어요.”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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