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의 봉오동전투, 대승을 거두다
1920년 중국 지린성 왕친현 봉오동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과 야스카와 지로 소좌의 일본군의 전투가 일어났다. 승리는 대한독립군이었다. 독립군은 단 10명만이 사망했고, 일본군은 150여명이 사망했다. 독립군은 봉오동 산지에 매복했다가 일본군을 삼면에서 포위하여 궤멸시켰다. 이 사건으로 독립군은 사기가 올라가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간다.봉오동은 두만강 40리 거리에 위치했던 험준한 계곡지대였다. 봉오동에는 100여 호의 민가가 있었고 이곳 상촌은 독립군의 훈련장이기도 했다. 봉오동 전투는 항일 무장독립운동사에 가장 빛나는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귀환하던 소유즈11호, 안타까운 운명
아폴로11호가 달을 정복하자 다급해진 소련은 우주정거장으로 목표를 바꾼다. 많은 우주선들이 우주정거장과 도킹을 통해 연료를 배급받기도 한다. 현재까지도 우주정거장은 많은 우주선들의 휴식처가 되어 우주정복보다 더 큰 역사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그러나 우주강국인 소련도 시련과 아픔을 겪었다. 때는 1971년 6월7일이다. 우주정거장 샬류트 1호와 도킹해 22일간 미션을 수행하고 귀환하던 ‘소유즈 11호’가 대기권에 진입하다 선체 균열로 우주인 세 사람 모두 질식해 숨졌다.
기록에 의하면 사고당한 소유즈11호에는 인류 최초 우주유영에 성공한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탑승할 예정이었으나 탑승직전 같은 크루멤버의 건강 문제로 멤버가 교체됐다. 알렉세이는 유리 가가린과 함께 소련 우주 개발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멤버가 교체된 소유즈 11호는 발사됐고 돌아오는 길에 참변을 당했다. 중량을 줄이기 위해 우주인들은 여압복조차 착용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선체 균열로 공기가 세어 나가자 모두 질식하고 말았다. 우주정거장에서 완벽하게 미션을 수행했지만 결국 지구로 무사 귀환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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