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오늘은 저 혼자 뵈러 왔습니다. 몸 건강히 잘 계셨죠?”
현충일인 6일 국립대전현충원 사병1 묘역.초로(初老)에 접어든 한 남성이 묘비 앞에 주저앉아 안부를 물었다. 검은 정장을 입고, 검은 우산을 쓴 채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이곳에서 만난 전창훈(53)씨는 한동안 묘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는 묘비 앞에 놓인 술잔을 따르며 “이곳으로 이장하고 꼬박 10년이 되는 해인데 홀로 찾아와 많이 섭섭하실 텐데 정말 죄송하다”고 고백했다.
전씨의 아버지는 6·25 한국전쟁 참전 용사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일대에서 벌어진 여러 전투에 참가해 용맹을 떨쳤다고 한다.
전씨는 “아버님은 6ㆍ25 한국전쟁 참전용사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아버지’이신만큼 어릴 적 아버지의 그 따스한 온정을 잊을 수 없다”며 그리워했다.
금년으로 61번째 현충일을 맞았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애국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한 날이다.
이날 국립대전현충원에는 호국영령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이들의 모습을 기억하려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추모객들을 가장 먼저 맞이한 건 현충원 정문에 걸린 ‘호국영령들이여! 편히 잠드소서!’라는 현수막이었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11만7700명이 잠들어 있다.
현충원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선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음악과 추모시가 흘러나왔다. 경찰들도 호루라기와 확성기 사용을 자제하며 수신호로 추모객을 안내했다.
묘역에서는 가족과 친지 또는 홀로 묘지를 찾은 추모객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를 올렸다. 찬송가를 부르는 가족 단위 추모객에서부터 나란히 서서 재배(再拜)로 예를 갖추는 추모객들까지 다양했다. 현역 3성 장군과 퇴역 장군들의 추모 일행은 묘지를 돌며 거수경례와 묵념을 통해 추모객을 위로하기도 했다.
진병숙(60)씨와 가족들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부산에서 새벽 4시에 출발했다고 한다.
진씨는 “아버지를 뵈러 간다는 기분에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고향이 경남 함안인 아버님께서 6·25 전쟁 때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을까 생각을 하면 눈물이 고인다”고 말한 뒤 흐느꼈다.
‘무명용사’ 묘역에도 추모의 손길은 이어졌다. 자원봉사자 김모(44)씨는 정성스레 묘비 위에 떨어진 나뭇잎을 털어내고 먼지를 닦아내고 있었다.
김씨는 “유해를 찾지 못해 신원 확인이 안 된 무명용사들의 넋을 기리는 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라며 “이분들께서 외롭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경기장역에서 현충원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기사 장모(51)씨는 “현충원을 찾는 어르신들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아프다”며 “이분들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만큼 어르신들께서 불편함 없이 참배하실 수 있도록 돕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보답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전 10시 1분간 울린 사이렌에 시민들은 묵념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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