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현충원 모습. 사진=서울현충원 홈페이지 |
1년에 한번 뿐인 현충일이지만 현충일과 조국에 대한 애국심은 점차 퇴색되어가고 있다. 단지 쉬는 날, 공휴일이라는 의미만 남았고 내 가족과 내 아픔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 받고 있다. 광복을 위해 싸우던 독립투사, 6.25전쟁으로 인해 산화된 군장병들, 조국을 지키던 못다 핀 꽃들… 현충원에는 외면해서는 안 될 조국의 영웅들이 잠들어 있다.
22번의 호국종 울리는 국내 최초의 군묘역
전국을 통틀어 현충원은 서울과 대전 단 2곳뿐이다. 서울현충원은 6.25전쟁으로 군장병들의 전사자 수가 늘어나자 묘지 설치문제를 논의하게 됐다. 1949년부터 지역, 예산과 영현관리 등의 수많은 문제로 중단됐었다. 이후 1952년부터 본격 지역답사를 시작하게 됐고 10개 후보지역 가운데 현재 서울 현충원인 동작구를 국군묘지로 선정했다. 이후 3년에 걸쳐 묘역을 조성했고 2005년 국회에서 동작동 국립묘지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됐다.현충문은 고려말기의 사당전과 극락전을 본 따 만들었고 두 마리의 호랑이가 좌우를 지킨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현충탑 제단 뒤쪽에는 헌시는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지었고 ‘현충시’로 불리고 있다. 현충문을 지나면 호국종이 있다. 호국종은 추념행사 이후 타종하고 있는데, 1995년부터는 6.25참전 16개국과 의무지원 된 5개국 그리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22개국을 상징하는 의미로 22번의 울리고 있다.
서울현충원에는 이승만(1965년), 박정희(1979년), 김영삼(2015년), 김대중(2009년) 대통령부터 한국통사로 알려진 박은식과 노백린, 김인전 지사의 묘역이 있다.
▲제1사병 묘역에서 바라본 대전현충원. |
대전현충원 대통령 안장 1호는 최규하
대전현충원은 서울 묘역의 안장 능력이 한계에 이르면서 제2의 현충원 필요성이 대두됐다. 1976년 계룡산 위치로 자리가 결정이 됐는데 대전충남의 최고 명산인 계룡산의 맥을 이어받은 문필봉 아래고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으로 꼽히는 지역이 선정됐다. 착공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1982년 사병이 최초로 안장됐다.애국지사와 국가유공자, 장군묘역, 일반묘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전직 대통령으로는 1호로 최규하 대통령이 안장됐다. 한국인 최초 유엔 산하 국제기구 수장이었던 이종욱 WHO 사무총장도 대전에 있고 마라토너 손기정, 아동문학가 윤석중, 김구 선생의 모친 곽낙원, 영화 아리랑의 감독 나운규이 잠들었다. 연평해전과 천안함 46용사도 대전에 안장됐다.
대전현충원에는 호국열차가 있다. 미카3-129는 6.25전쟁에 참여했던 공훈을 인정받아 코레일의 협조로 현충원으로 오게 됐고 사병 제1묘역 왼편에 자리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대전현충원에는 요술도로가 있는데, 국가사회공헌자 유공자 묘역 주차장 앞길에서는 시동을 끈 채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내리막길에서 자동차가 스스로 언덕을 오른다. 제주도 도깨비 도로와 같은 곳으로 지형으로 인한 착시 현상이 나타나는 곳으로 밝혀졌다.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리고 못다 피운 인생의 꽃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현충원에 방문해 보면 느낄 수 있다.
6월6일 오전 10시 묵념 사이렌이 울린다.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과거의 모든 것이 우리와 연관이 없는 일이 아니듯, 현충원에 잠든 수많은 고귀한 희생이 우리에겐 마음의 빚임을 깨달아야 하겠다.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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