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스티븐 그린블랫, 까치, 2013 |
1417년, 뛰어난 필사가이자 라틴어 번역자, 탁월한 인문주의자였던 포조 브라촐리니는 섬기던 교황 요한네스 23세의 퇴위가 결정되고 구금되자 잃어버린 고대의 문헌을 찾아 책 사냥을 떠났다. 독일의 한 수도원(풀다 수도원으로 추측된다)에서 포조는 가슴이 뛰는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된다. 기원전 50년경에 티투스 루크레티우스 카루스라는 이름의 시인이자 철학자가 쓴 장편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한 것이다. 포조는 책의 진가를 바로 알아보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책을 필사하여 피렌체의 동료들에게 보냈다. 아마도 포조와 동료들은 작업 당시 그 책이 무슨 의미인지, 그들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몰랐을 것이다.
루크레티우스는 기원전 96년~55년경에 살았던 고대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였다. 그의 일생에 대해 별로 알려진 것은 없다. 정신 이상이 되었다던가, 44세에 자살했다고 전해지나 루크레티우스의 사상을 음해하려는 공작으로 보인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총 7400행으로 압운 없이 이루어진 6개 음절로 한 행을 구성하는 표준적인 6보격 형식을 취하고 있는 시 형식의 저서이다. 소제목 없이 6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다양한 주제가 한데 얽혀있다. 강렬한 서정적 아름다움의 순간, 종교에 관한 철학적 명상, 쾌락, 죽음, 물질계, 인간 사회의 발전, 성의 위험과 즐거움, 질병의 본질 등에 관한 복잡한 이론들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 '사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들로 만들어진다.', '모든 입자는 무한한 진공(void)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사후세계는 없다.', '모든 체계화된 종교는 미신적인 망상이다.' 몇 가지만 살펴봐도 당시 얼마나 논란이 되었을까 싶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적 지주인 에피쿠로스는 신이 이 우주의 창조자도 파괴자도 아니며 쾌락 외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롱당한 기독교는 특별히 에피쿠로스 사상을 사악한 위협으로 생각했다.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피하자는 에피쿠로스 철학은 사실 호소력 있는 목표이며 충분히 인간의 삶을 합리적으로 조직하는 원칙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의 적들은 에피쿠로스 사상을 괴이하고 관능적인 방종(성, 권력, 돈 등)으로 몰고 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세상에서 잊혔던 책은 한 책 사냥꾼에 의해 재발견되어 근대의 시작을 열었을 뿐 아니라, 후대의 유클리드의 기하학, 아르키메데스의 원주율,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몽테뉴의 수상록과 토머스 모어의 미국헌법초안(행복추구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나 역시 도서관 사서로서 책에 대한 욕심은 상당하다. 사서이자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욕심나는 책은 늘 있다. 때론 중고서점에서, 때론 오래된 도서관에서 나만의 보석 같은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또한 포조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1417년, 근대의 탄생'은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전미국도서상 논픽션 부문에서 수상했다. 혹자는 딱 한 권의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이 책을 선택한다고 했다. 포조 브라촐리니, 에피쿠로스, 루크레티우스의 삶과 철학에 대한 방대한 자료 조사와 폭넓은 이해, 거시적 관점으로 시대를 해석한 심미안으로 근대를 열었던 책과 그 책이 발견되기까지의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 스티븐 그린블랫에게 찬사를 보낸다.
최정윤·진잠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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