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권 목원대 총장 |
흔히 두 진영 사이의 이와 같은 언쟁이 쉽게 결론 나지 않는 것은 서로의 주장이 문제의 본질에 대한 언급을 피하기 때문이다. 양편의 주장이 문제의 핵심을 직접 거론하는 것을 피한 채, 혹여 책잡히는 일이 없게 하려고,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서로 친밀한 관계에 있지 않은데도 그런 것을 함부로 거론했다가는 큰 감정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친밀한 사이, 예컨대, 친구사이 같으면 그런 것을 여과 없이 거론하기 때문에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흔하다. 두 사람이 여러 차례 만나 소통하여 문제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더라면 자연스럽게 해소되었을 것이지만, 한쪽이 대화를 계속 거부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인간사가 다 그렇지만, 교육에 있어서도 소통은 아주 중요하다. 요즘은 대학에서도 강의평가라는 것을 한다. 학생들이 교수들의 강의에 점수를 매기는 것인데, 학생들을 평가하는 데 익숙한 교수들의 입장에선 매우 불쾌한 일이어서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 논란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의 평가가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교수들을 평가하는 자료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교수님은 온갖 정성을 들여 강의준비를 하고 열성적이고도 친절하게 강의를 했는데도, 기말에 평가를 받아보면 허탈하기 짝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 자체가 그 교수와 학생 사이엔 소통이 부재했음을 드러낸다. 소통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강의라 하더라도 일방적인 강의만 가지고 소통을 했다 할 수는 없으며, 소통이 부족한 강의의 평가가 나쁘게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소규모 강좌가 많고 교수와 학생 사이의 접촉이 빈번한 학과에서 강의 평가가 좋게 나오고, 교양강좌처럼 다수의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강의의 평가가 나쁘게 나오는 것은 소통이 평가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방증(傍證)한다 할 수 있다. 음악이나 미술처럼 거의 일대일로 강의하는 경우의 강의평가는 아주 좋다. 그 일대일 강의를 통해서 교수와 학생 사이엔 더 많은 얘기를 주고받는 게 가능한데, 그게 바로 소통이다. 또 일대일 강의의 경우 강의 내용 중 이해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바로 질문하여 다시 설명을 들을 수도 있고 강의 외적인 조언과 상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반면에, 많은 학생을 상대로 하는 강의, 그중에서도 교양필수처럼 학생들이 듣기 싫더라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경우는 강의평가가 좋게 나올 수 없다. 물론, 그 많은 학생들과 교수가 어떻게든 소통을 한다면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소통은 친밀한 만남을 통해서 가능하고 친밀함은 다소 허술함에서 나온다. 완벽한 강의준비와 마치 논문을 읽어나가는 것 같은 짜임새 있는 강의만 가지고는 소통을 다했다 할 수 없다. 아무리 심오한 학문적 깊이와 폭을 지녔다 하더라도, 교수님이 너무 엄숙해서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라면 그의 학문전수는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다. 가르치는 사람은 가끔 농담도 하고 실수도 저질러 학생들을 웃게 만들 필요가 있다. 교육도 결국은 사람 간의 정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도 농담을 하지 않는 부부가 사이좋을 리 없고, 한 번도 농담을 건네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남북관계가 관계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친밀한 소통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교육은 소통이요 인정(人情)이다.
박노권 목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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