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교육은 인정이다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 교육은 인정이다

  • 승인 2016-06-01 13:57
  • 신문게재 2016-06-02 22면
  • 박노권 목원대 총장박노권 목원대 총장
▲ 박노권 목원대 총장
▲ 박노권 목원대 총장
두 부서의 책임자가 총장실을 찾아와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양 측의 주장을 차례로 들어보니 둘 다 옳은 것 같아 도통 판단이 서지 않는다. 서로 상대방의 말을 반박하게 내버려 둬도 결론이 나질 않는다. 이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자니 다른 쪽의 반발이 예상되고, 그렇다고 해서 둘 다 틀렸다고 할 수도 없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이미 두 진영의 주장을 따로 듣고 난 후의 만남이기 때문에 무엇이 이 조직을 위한 것인지는 안다. 그렇지만 '심판'을 잘못 봤다가는 한쪽하고는 영원히 원수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직의 단결은 요원해진다. 결국,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둘이 더 협의해 볼 것을 권하고는 만남을 끝냈다. 그 두 사람이 필자 앞에서 멱살잡이하기 전에 회합을 끝낸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흔히 두 진영 사이의 이와 같은 언쟁이 쉽게 결론 나지 않는 것은 서로의 주장이 문제의 본질에 대한 언급을 피하기 때문이다. 양편의 주장이 문제의 핵심을 직접 거론하는 것을 피한 채, 혹여 책잡히는 일이 없게 하려고,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서로 친밀한 관계에 있지 않은데도 그런 것을 함부로 거론했다가는 큰 감정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친밀한 사이, 예컨대, 친구사이 같으면 그런 것을 여과 없이 거론하기 때문에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흔하다. 두 사람이 여러 차례 만나 소통하여 문제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더라면 자연스럽게 해소되었을 것이지만, 한쪽이 대화를 계속 거부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인간사가 다 그렇지만, 교육에 있어서도 소통은 아주 중요하다. 요즘은 대학에서도 강의평가라는 것을 한다. 학생들이 교수들의 강의에 점수를 매기는 것인데, 학생들을 평가하는 데 익숙한 교수들의 입장에선 매우 불쾌한 일이어서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 논란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의 평가가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교수들을 평가하는 자료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교수님은 온갖 정성을 들여 강의준비를 하고 열성적이고도 친절하게 강의를 했는데도, 기말에 평가를 받아보면 허탈하기 짝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 자체가 그 교수와 학생 사이엔 소통이 부재했음을 드러낸다. 소통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강의라 하더라도 일방적인 강의만 가지고 소통을 했다 할 수는 없으며, 소통이 부족한 강의의 평가가 나쁘게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소규모 강좌가 많고 교수와 학생 사이의 접촉이 빈번한 학과에서 강의 평가가 좋게 나오고, 교양강좌처럼 다수의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강의의 평가가 나쁘게 나오는 것은 소통이 평가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방증(傍證)한다 할 수 있다. 음악이나 미술처럼 거의 일대일로 강의하는 경우의 강의평가는 아주 좋다. 그 일대일 강의를 통해서 교수와 학생 사이엔 더 많은 얘기를 주고받는 게 가능한데, 그게 바로 소통이다. 또 일대일 강의의 경우 강의 내용 중 이해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바로 질문하여 다시 설명을 들을 수도 있고 강의 외적인 조언과 상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반면에, 많은 학생을 상대로 하는 강의, 그중에서도 교양필수처럼 학생들이 듣기 싫더라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경우는 강의평가가 좋게 나올 수 없다. 물론, 그 많은 학생들과 교수가 어떻게든 소통을 한다면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소통은 친밀한 만남을 통해서 가능하고 친밀함은 다소 허술함에서 나온다. 완벽한 강의준비와 마치 논문을 읽어나가는 것 같은 짜임새 있는 강의만 가지고는 소통을 다했다 할 수 없다. 아무리 심오한 학문적 깊이와 폭을 지녔다 하더라도, 교수님이 너무 엄숙해서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라면 그의 학문전수는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다. 가르치는 사람은 가끔 농담도 하고 실수도 저질러 학생들을 웃게 만들 필요가 있다. 교육도 결국은 사람 간의 정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도 농담을 하지 않는 부부가 사이좋을 리 없고, 한 번도 농담을 건네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남북관계가 관계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친밀한 소통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교육은 소통이요 인정(人情)이다.

박노권 목원대 총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