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인내와 느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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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 인내와 느림의 미학

  • 승인 2016-05-31 15:13
  • 신문게재 2016-06-01 22면
  • 최철영 대전대흥초 교장최철영 대전대흥초 교장
▲ 최철영 대전대흥초 교장
▲ 최철영 대전대흥초 교장
“어제는 역사요, 오늘은 미스터리지만 오늘은 선물이다. 그게 현재를 선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말은 책, 만화, 영화 등 여러 곳에서 인용되고 있는 문구다. 최근 영화 '쿵푸판다'에서 복잡한 심정으로 복숭아를 먹고 있는 판다 포에게 거북이인 우그웨이 사부가 이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판다와 거북이는 태생적으로 자연과 함께 자유롭고 느린 삶을 살아간다. 많은 동물 중 판다와 거북이를 캐릭터로 선택한 것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작은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지금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자.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더 빨리 하는 것이 미덕이 되어 우리는 의도치 않게 주변 사람을 다그치고 어떤 성과를 남보다 빨리 내기 위해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는 경쟁 속에 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는 소중한 가족, 친구, 동료를 뒤로 한 채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며 이를 한탄하고 있다.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삶의 패턴을 그대로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조들이 물려주셨던 선물, 즉 인내와 느림이 함께 하는 삶을 잃어버리고 있다.

언젠가 서울에 볼 일이 있어서 KTX를 탔었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50여분이면 도착하니 시간이 단축되어 볼 일을 보기에 좋았다. 내려오는 길에는 여유로움을 느껴보려 완행열차를 택했다. 올라가는 길에서는 보지 못한 바깥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최고속력으로 달리는 KTX 안에서 바깥 풍경을 구경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타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것이다. 저 멀리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있는데 왜 몰랐을까? 잠시마나 완행열차 덕분에 느긋하게 봄의 향연을 즐길 수 있어서 행복했다. 빠름에는 분명히 장점이 있다. 하지만 느림에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을 제대로 누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신 중 시간과 관련된 두 신 즉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따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물리적 시간'을 뜻한다. 하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개인에 따라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을 뜻한다.

한 시간 동안 A는 자신이 좋아하는 춤을 신나게 출 수 있다. B는 그 시간동안 원하지 않는 일을 맡아 억지로 해야만 한다. A와 B에게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은 어떨까? 크로노스의 시간은 1시간으로 똑같겠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다를 것이다. A는 한 시간이 너무도 짧아서 아쉬울 것이요, B는 시간이 안 간다고 애꿎은 시계만 탓할 것이다. 이렇듯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시간 즉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카이로스의 시간에서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아등바등 시간에 쫓기면서 시간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지 주어진 시간을 여유롭게 내 것으로 만들어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가 살면서 A와 같은 상황에만 처하는 것은 아니다. B와 같은 상황에 처하는 것도 부지기수다. 억지로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숨을 고른 후 천천히 한 발씩 내딛는 것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이고 가장 중요한 시간이 언제냐고 말이다. 이미 당신은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 내 옆의 사람들을 바라보자. 당신 눈에 보이는 사람이 바로 가장 중요한 사람이요, 오늘이라는 이 순간이 앞으로는 다시 오지 않을 중요한 시간이고 선물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하루하루는 열어보지 않은 선물이다. 현재라는 선물에 잠시 고개를 돌려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가면 어떠한가? 인내와 느림의 현재가 모여 아름다운 인생을 되고 그것이 미스테리를 푸는 미래의 열쇠가 될 것임을….

최철영 대전대흥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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