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책]가벼운 사랑의 테크닉 기대한다면 이책을 덮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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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책]가벼운 사랑의 테크닉 기대한다면 이책을 덮어라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문예출판사, 2006

  • 승인 2016-05-26 14:54
  • 신문게재 2016-05-27 12면
  • 오종필 용운도서관 사서오종필 용운도서관 사서
[사서들의 맛있는 책읽기]

▲오종필 용운도서관 사서
▲오종필 용운도서관 사서
언제부턴가 제목은 익히 들어 알고 있어서 한 번 읽어 봐야겠다고 벼르던 책이 손에 잡혔다. 잠시 펼쳐 본 머리말이 확 끌어당겨 연휴 3일에 걸쳐 읽었다. 머리말에는 “흔히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한가?”란 질문을 던지며 사랑하는 데 기술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칠 의도로 썼기 때문이다. 와~ 읽는 내내 많이 졸렸다. 읽어내는 데 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1956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려웠다. 내용이 요즘 우리 현실과 거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왜일까? 당시 서양은 이미 자본주의 역사가 한참 진행 되고 있던 데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비판적으로 계승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문예출판사, 2006
▲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문예출판사, 2006
저자 에리히 프롬은 독일 태생 미국의 정신분석학자고 사회철학자다. 1922년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뮌헨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의 정신분석을 연구한다. 1933년 나치 치하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하고 정신분석학자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미국에서는 정통 프로이트 학파와 대립하기도 했다. 콜럼비아대학, 뉴욕대학 등에서 정신분석학을 강의하면서 인간의 욕망에 의한 사회와 개인 간의 갈등에 주목하는 논문들을 발표했다. 프로이트주의,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 종교 등에 대한 비판적 저서와 인간본성, 윤리학, 사랑에 대한 방대한 저작은 사회과학자들과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주요저서로는 이 책에 외에 《자립적 인간》 《정신분석과 종교》 《자유로부터의 도피》 《건전한 사회》 《희망의 혁명》 《인간의 마음》 등이 있다.

간편한 사랑의 기술 지침을 기대하는 사람은 이 책을 읽고 실망할 것이다.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와는 관계없이 아무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기 때문에. 이 책은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주려고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그 어려움과 사랑에 도달하는 조건들을 알아보는 일조차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이전에 내 책에서 표현된 사상을 되풀이할 수도 있지만, 이전을 넘어선 많은 사상이 제시되어 있고, 옛 사상이라 하더라도 '사랑의 기술'이라는 한 주제에 집중함으로써 새로운 시야를 얻게 한다.

여러 가지 세상 조건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증 없이 자기 자신을 맡기고 우리의 사랑이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키리라는 희망에 몸을 맡기는 것을 뜻한다. 사랑은 신앙의 작용이며 따라서 신앙을 갖지 못한 자는 거의 사랑하지 못한다. 사랑을 실천하는 태도, 즉 '활동'이 필요하다. 이 활동은 '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 활동, 즉 자신의 힘을 생산적 이용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사랑은 활동이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 나는 그나 그녀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적극적 관심을 갖는 상태에 놓여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타인에 대한 사랑 사이에 '분업'은 있을 수 없다. 반대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조건이 된다.

사실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설교'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궁극적이고 현시적 욕구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욕구가 은폐되었다는 것은 이런 욕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랑의 본성을 분석하는 것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랑이 결여되었다는 현상을 밝혀내고 이러한 결여 상태에 책임이 있는 사회적 조건을 비판하는 것이다. 개인의 예외적 현상일 뿐만 아니라 사회현상으로서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신앙을 갖는 것은 인간의 본성 자체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 신앙이다.

오종필 용운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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