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이봉창 의사 순국지 내 형사자위령탑이 쓰레기 더미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사진 속 이봉창 의사 사진은 조폐공사 메달. |
형사자위령탑은 1964년 일본 변호사연합회가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숨진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현재는 어린이놀이터가 되었고 구석에 외롭게 위령탑이 서 있다. 서경덕 교수가 신주쿠 구청에 쓰레기수거장을 옮기고 안내 간판을 세워 달라 요청했지만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대응책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왕에게 폭탄 던진 이봉창 의사는?
“선생님, 제 나이 이제 서른 하나입니다. 앞으로 서른 한 해를 더 산다 해도 지금보다 더 나은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 동안 쾌락이란 것을 모두 맛보았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한 쾌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상하이로 온 것입니다. 저로 하여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성업(聖業)을 완수하게 해주십시오.”이봉창 의사가 독립운동을 시작하기 전 백범 김구 선생에게 전한 이야기다.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사망한 이봉창 의사는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독립투사다. 준비시간에만 1년이 소요됐을 만큼 중요한 임무였다. 비범한 기개의 이봉창 선생을 알아본 사람은 김구 선생이었고, 백범은 자금과 수류탄을 준비해 전달했다. 1932년 1월 8일 거사가 진행됐고 신년 관병식이 종료되고 돌아가는 일왕의 마차에 폭탄을 투하한다. 말이 다치고 마차가 뒤집어졌으나 일왕은 무사했다. 거사는 실패했다. 일왕을 살해하려 했다는 이유로 그해 9월 일본 도쿄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10월 교수형이 진행됐다. 그의 유해는 백범 선생이 인도 받아 1946년 광복 후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독립유적지 관리 허술… 부끄러운 줄 알아야
이번 신주쿠 형사자위령탑 쓰레기 방치와처럼 독립 유적지가 허술하게 관리되는 일은 종종 있어왔다. 작년 윤동주 생가가 있는 연변 용정 명동촌도 한차례 논란이 됐다. 이유는 연변자치정부에 의해 윤동주 생가가 복원되면서 표지석이 세워졌는데 ‘조선족 애국시인’으로 새겨있기 때문이다.▲중국 당국이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시에 있는 윤동주 시인 생가를 지난 2012년 복원하면서 대문 옆에 세운 표지석. 연합뉴스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의 독립운동 유적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조사 대상 유적지 가운데 멸실되고 흔적을 찾기 어려운 곳이 868곳에 달했고, 521곳은 변형됐고, 9곳도 상당부문 훼손된 상황이었다. 1460곳은 이미 사라졌거나 훼손과 변형이 심각해 유적지의 기능을 잃은 곳도 있다고 보고했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조국을 위해 항일투쟁 했고 목숨을 바친 독립군들의 역사가 쓰레기 더미에 쌓여있고 국적이 바뀌어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윤동주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시를 썼다. 이봉창은 자신의 영원한 쾌락(독립)을 위해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광복의 영광. 우리는 그 위에 부끄러움만 쌓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독립역사지에 대한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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