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게으른 대추나무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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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 게으른 대추나무의 교훈

  • 승인 2016-05-24 14:23
  • 신문게재 2016-05-25 22면
  • 황은희 아산남성초 교사황은희 아산남성초 교사
▲ 황은희 아산남성초 교사
▲ 황은희 아산남성초 교사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연둣빛 나뭇잎들이 새 단장하며 꽃의 자리를 대신하고자 분주하다. 산과 들의 모든 생명들이 잎의 계절로 가기 위해 분주한 이 때, 아직 꿈쩍하지 않고 늦잠을 자는 나무가 있다. 조금은 무심하고 게을러 보이는 나무, 바로 대추나무다.

가장 늦은 봄에 잎을 보이지만 가을이 되면 누구보다 먼저 달고 튼실한 열매를 우리에게 줄 대추나무임을 알기에 그 게으름을 책망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여유로움이 부럽다.

남들이 모두 서둘러 봄을 맞이하려 잎을 틔우는 그때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는 대추나무, 그 게으른 대추나무의 교훈을 생각해 보게 된다.

며칠 전 여섯 살짜리 아들을 둔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옆에 데리고 앉아 수학 학습지를 풀다 보니 덧셈, 뺄셈을 너무 못해 야단을 치고 난 후 속상하다며 하소연을 했다. 수 개념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을 터이니 차근차근 놀면서 함께 숫자 세고 읽기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동생은 아이의 늦됨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어린 조카가 학습지를 앞에 놓고 쩔쩔 매고 있을 생각을 하니 갑자기 걱정도 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기다려주고 재미있게 익히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될지 모를 연산의 법칙을 학습지를 통해 힘들고 어렵게 배워나가야 할 아이의 마음을 어른들은 자주 잊어버리는 듯하다.

'다 철이 있다고, 기다리면 된다'고 하신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좀 늦되더라도 제대로 가르치고 제대로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충남교육청의 한글교육은 말 그대로 대추나무 교육이 아닌가 한다. 소근육이 아직 발달하지 못해 연필을 바르게 잡지 못할 뿐 아니라 글자를 그림으로 인식하는 7세 이전의 아이들에게 무리한 선행을 하지 말자는 것이 그 근본 취지일 것이다.

때가 되면 가르치고 때가 되면 익힐 터이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성급한 한글 교육보다는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게 천천히 학교 안에서 배우게 해야 한다는 배려가 반갑기만 하다.

무리한 선행을 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는 교육을 하자는 뜻에 깊이 공감한다.

진로교육이 강조되면서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학생들의 진로 탐색 및 인식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학교는 매주 월요일 아침, 학생이 방송을 통해 본인의 꿈을 발표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다짐하는 '나의 몽(夢) 키(Key) 소개하기' 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저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소개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진학할 대학의 과, 갖추어야 할 자격증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곤 한다.

우리 어린 시절과 달리 하고 싶은 다양한 일들을 당당히 발표하고 체계적으로 그려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저 놀랍기 그지없다.

기특하고 대견할 뿐이다. 여기에서 문득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말과 생각을 만들어 나가는 능력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스스로 영글어 나갈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조금 늦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자신감 있게 생활해 나갈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십년이라는 짧지 않은 교직 생활 동안 영민하게 앞서 성장하는 아이들만 보아온 것은 아니다. 때로는 또래 아이들보다 늦어 걱정을 주던 제자들이 폭풍성장 해 놀라운 기쁨을 주는 날도 있다.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해 자기만의 시간을 기다리는 대추나무처럼 말이다.

조급함을 버리고 여유 있게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봄날 게으른 대추나무가 주는 교훈이다.

황은희 아산남성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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