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가 시작되는 소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무려 7개의 절기를 기다림으로 보냈다. 봄이 오길 기다렸고, 겨울잠에서 동물들이 깨어나길 기다렸고, 또 봄비가 새싹과 꽃을 틔우길 기다렸다. 어느새 세상은 기다림이 만들어 낸 선물들로 가득하다. 기다림은 충분했다. 이제 바쁘게 세상을 누빌 차례.
5월20일은 여름의 두 번째 절기인 소만이다. 만물이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다. 이 무렵 농촌은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낸다. 보리를 수확하고 모내기를 한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 이미 모내기를 마친 곳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소만을 중심으로 벼를 심는 곳이 많다.
벼를 심었지만 가을이나 돼야 먹을 수 있었으니 소만 무렵 수확되는 보리는 보릿고개의 견뎌내는 귀중한 식량이었다. 요즘처럼 보리가 흔한 대접을 받는 다는 것을 옛사람들은 알까. 별미로 먹는 보리, 이 또한 오랜 기다림 끝에 받게 되는 소만 절기의 특별한 특혜였다.
▲소만에는 영양 가득한 죽순을 즐겨 먹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소만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
초여름인 5월에 설늙은이가 얼어 죽는다니, 황당한 속담이 아닐 수 없다. 허나 이시기 아침에는 꽤 찬바람이 불어온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을 느껴봤을 게다. 낮기온은 30도에 육박하면서 동이 트는 새벽에는 온몸을 움츠리게 하는 추위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뭐 결국 한낮 태양에 소멸되고 말지만, 잠깐이나마 소만의 추위는 꽤 파급력이 있었던 모양이다.소만에는 죽순을 즐겨먹었다. 솟구쳐 오르는 죽순의 힘. 대나무로 크기 전 아주 짧은 시기에만 만날 수 있는 죽순은 누런색이다. 신록의 푸르름이 절대적인 여름에 누런 죽순이라니, 다소 어울리지 않지만 대나무로 크기 위해 모든 영양분을 먹고 누렇게 쑥쑥 자란다. 이 죽순을 잘라 먹으면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준다.
모내기를 하고 보리를 베고, 죽순을 먹고, 아침나절 찬바람 피하고… 소만은 참으로 분주한 절기다. 풍년의 소망을 한가득 품고 소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에게는 늘 똑같은 하루지만, 농촌의 소만은 출발선을 통과한 달리기 선수와 같다. 이제 막 레이스 올랐다. 이대로 추수까지 질주하는 일만 남았다. 계절이라는 페이스메이커에 발맞춰 달려간다. 성큼성큼 소만의 달리기가 꽤나 힘차다.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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