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현설 충주시보건소장 |
가슴속에 채워있던, 무엇으로 표현되지 않던 그 무엇인가 무너져 내려앉는 느낌으로 끝내 듣고 싶지 않던 소식을 들어야 했다.
금방이라도 환한 웃음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어 반가이 말을 걸어올 것만 같은 이종애 님이 오랜 투병 끝에 이승과 다른 세상으로 강을 건너가셨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그 소식을 듣고 나서 갑자기 세상이 아득했다.
당신도 출가시킬 따님을 두었지만 시골마을 어르신에게는 더없이 귀한 딸로 이종애 님은 26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시민의 건강 지킴이로 쉼 없이 일해 왔다.
다른 이의 건강을 돌보다 본인의 병이 깊어지는걸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럴 리는 없다.
시골 어르신의 노쇠한 건강에 마음 아파하며 자신의 노후에 대해, 동료들의 건강 생활을 염려하곤 했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병마가 성한 육신을 갉아먹을 때 깊은 아픔에도 늘 긍정적인 표현을 즐겨하며 태연했다.
이종애 님이 머물던 곳을 정리하는데, 밝은 표정의 사진 한 장이 책상유리 아래 자리하고 있었다. 이젠 저 웃음을 그림으로 만나야 한다는 사실에 눈에 맺히는 책상이 이지러진다.
40여일을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면서 비워둔 자리에 곧 돌아올 거라며 보건지소를 찾는 어르신의 건강을 챙겨달라고 했고 극심한 고통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자 했던 이종애 님이 아니던가?
이종애 님은 중원군 앙성면 단암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는 마을 근처에서, 중학교는 강 건너 원주시 부론면에서 마쳤다.
우리 근, 현대사에서 어느 시기보다 격변하는 시간에 성장의 대부분을 보냈고, 농촌에 자리한 가정형편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하지 못했다.
이종애 님은 간호조무학원을 수료하고 보건지소에 입사했다.
이후 목마른 배움의 꿈을 채우기 위해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해 새벽마다 들려오는 라디오 방송에 귀 기울이며 3년만에 고교과정을 마쳤을 때의, 그 기쁨은 늘 삶 속에서 생활로 켜켜이 쌓여 웃음을 머금은 삶으로 점점이 찍혀나지 않았을까?
주경야독의 열정으로 대원과학대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하고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자격을 취득하면서 은퇴 후 활동을 준비하던 강철같은 의지를 보이던 님이 기뻐하던 모습이 어른거린다.
쾌활하고 다정했던 마음 씀씀이는 본인이 겪어낸 신선한 삶을 잊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과장된 웃음과 품 큰 몸짓을 했는가 보다.
아쉬움이 많은 헤어짐을 그냥 다 받아들이기 어려워 작은 글로 만들어 조용한 곳에 걸기로 했다.
시간이, 삶이, 만남과 헤어짐으로 교차하는 것이 인간사의 보편적인 진리라 하지만 이종애 님이 떠나고 남은 자리엔 아직도 못다 핀 고민의 꿈이 푸르게 푸르게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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