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태 충남기계공고 교장 |
오늘도 한 아이가 인사를 왔다. 그 동안 갈고 닦은 그 기술, 그 자격, 그 인성으로 수 백대, 수 십대의 압축해가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기업에 최종 합격했다며 취업 현장으로 꿈을 찾아 떠나겠다고 온 것이다. 항상 겪게 되는 계절병 같은 찡하고, 멍멍한 이 증세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아직 어리고 여린 학생의 신분인데, 아직은 또래들과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짜장면도 먹어야 하는데 너무 일찍 취업한다고 생각하니 안쓰러워서 그럴 것이다.
우리 학교의 자랑 중에 하나가 매분기마다 커다란 현수막에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글귀를 새겨 건다.
“저게 저 혼자 붉어질 리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이하생략) -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이라는 시다. 한 알의 작은 대추가 어떻게 자라나 환경에 견디며 성장하는지 학생들은 등·하교 때마다 수없이 보고 읽으며 숙연하게 느꼈을 것이다. 우리 학생들도 한 알의 대추처럼 때로는 덥고, 때로는 추운 날씨에도 3년간 윙윙 돌아가는 기계음의 실습장에서 나태한 여분에 채찍을 해가며,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줄여가며 생각과 기술을 정교화시켜 갔다. 그 세월이 일년, 이년, 삼년, 이제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그 기술, 그 인성의 힘에 3년의 때가 묻으면서 대추 한 알이 붉어지듯이 기술의 뼈대가 되고, 생각의 근육이 되었을 것이다.
미국의 하버드대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인간의 지능은 IQ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공간지능, 신체-운동지능, 음악지능, 대인관계지능, 개인이해지능, 자연관찰지능 등 서로 독립적인 8개의 다중지능이론을 발표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눈썰미와 손기술이 남다른 우리 학생들은 공간지능, 신체-운동지능, 대인관계지능, 자연관찰지능 등이 뛰어나므로 졸업 전까지는 자격증을 1~2개 무난히 취득할 수 있다. 그동안 “모두가 1등은 아니더라도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인재 육성“이라는 경영 방침하에 학교에서 3년간 자르고, 조이고, 다듬어 왔던 세월이다. 학생들은 이제 사회라는 좀 더 넓은 필드에서 생존에 필요한 환경에 잘 적응할 것이다. 그리고 그 환경을 잘 극복해서 선배가 그랬듯이 대한민국의 명장(名匠)으로서 또는 조국 발전을 견인하는 훌륭한 CEO도 될 것이다.
꿈을 찾아 떠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7세기 돌궐의 명장 돈유쿠크 비문에는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성(城)을 쌓는다는 건 폐쇄요, 불통이다. 반면에 길(道)을 낸다는 건 개방이고 소통이다. 꿈을 찾아 떠나는 우리 학생들의 몸과 정신도 성을 쌓아 놓고 한 곳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란다. 특정한 삶의 방식과 가치에 머무르지 말고 자신의 중심에 전공인 공학을 두고, 인접 학문인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지평을 넓히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 학생들의 삶의 궤적이 자기를 보호해 주던 가정이나 학교 틀 안의 생활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직장이라는, 사회라는 틀 밖의 생활을 하게 된다. 그동안 “아하~!”하는 반듯한 정답은 대부분 학교라는 틀 안에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하는 놀랍고 새로운 해답은 틀 밖에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이제 틀 안에서 배우지 않았던 “세상에~!”가 나오면 책이나 선배 그리고 모교 선생님을 찾아 스스로 적극적으로 해결하길 바란다. 부디 현장에서 빠르게 적응하고 그리고 여유가 되고 능력이 된다면 단순한 월급사원을 넘어, 창업의 세계도 꿈꾸고, 한국의 사회를 넘어 지구 밖으로 행군해 보라고 주문하고 싶다.
박준태 충남기계공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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