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
공공문화재단은 현재 광역 단위에 14개, 기초 단위에 57개가 있다. 여기에 20개가량이 더 설립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민선 6기 중 90개를 훌쩍 넘기고 100개를 돌파할 날도 그다지 멀지 않은 것 같다. 1997년 공공문화재단으로서는 최초로 경기문화재단이 문을 연 뒤 20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새로운 문화재단들이 경쟁하듯 문패를 달고 있다. 일단 이는 문화정책이 문화 이외의 일반 정치와 행정 행위의 목표를 달성하는 통합적이고도 완결적인 방법론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문화의 시대가 열린 것.
그러나 이렇게 거창한 문화사 또는 문화정책사적인 포장지의 한 꺼풀을 걷어냈을 때 드러나는 문화재단의 속살은 갑갑하기 짝이 없다. 하여 그럴 듯한 의미 부여가 이내 부끄러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단의 수적인 확대와 그 기능의 양적인 팽창 속에서도 ‘문화재단은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흔히 지적되는 CEO의 자질과 리더십 역량의 부족 같은 것이야 한 개인의 문제이거나 재단이 아닌 다른 어느 기관에도 해당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이라 볼 수 있으므로 차치하자. 그럼, 전국의 문화재단들이 위기에 봉착한 근본적인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문화재단들이 정치적으로는 논공행상의 좌판쯤으로, 행정적으로는 관료조직의 말단세포쯤으로 치부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단체장에게 문화재단은 선거 참모들이나 그들의 천거에 따른 누군가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곳이고, 공무원들에게 문화재단은 본래 자신들의 할 일을 정원 밖 조직에 맡겼으므로 그저 무탈하도록 하나하나 관리·감독해야 할 수하조직이기 때문이다. 민관 거버넌스 기관으로서의 문화재단의 전문성과 유연성은 그 싹조차 자랄 틈이 없다. 문화의 중요성이 날로 커진다는 이유로 문화재단에 대한 정치적·행정적 관리·감독 또한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외려 반문화적인 핑계에 불과하다. 문화란 본래 딱딱한 육면체 상자와도 같은 관리·감독의 바깥에서 피어나고 또 자라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지역문화재단의 진정한 리더십이 확보되어야 한다. 최근 필자가 행한 문화재단 리더십과 관련한 연구조사의 결과를 일부 소개한다. 응답자는 202명으로서 각 지역의 재단 임·직원, 문화 업무 담당 경험이 있는 공무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중앙 단위 문화행정기관의 담당 직원, 예술단체 임·직원과 예술가, 문화예술 현장 활동가, 사계의 학자들이었다. 여기서 지역문화재단의 리더십이란 CEO 개인의 리더십을 포함하여 ‘지역문화재단이 한 지역사회의 행태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와 과정, 그리고 그 역량’을 이른다.
응답자들은 재단 리더십의 구성요인이 ‘문화행정 전문기관으로서의 운영 자율성의 필요성’(24.0%), ‘단기적 성과보다 중장기적 성과평가 시스템의 필요성’(17.2%), ‘지역문화예술계와의 네트워크 및 소통 역량과 그 체계성에 대한 필요성’(12.3%) 등에서 여타 기관들과 다르다고 하였다. 또한 지자체장의 중요한 마인드로는 ‘재단 운영의 자율성 보장 원칙’(28.3%), ‘재단의 인사와 지원사업 운영의 공정성 보장 원칙’(16.5%), ‘재단에 대한 정치적 불개입 원칙’(11.6%), ‘재단 CEO의 전문적 경영 능력에 대한 필요성 인식과 그 인사 원칙’(11.3%), ‘재단 CEO의 문화예술 전문성에 대한 필요성 인식과 그 인사 원칙’(9.2%) 들을 꼽았다.
이제 현재의 위기가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지 알았을 것이다. 문화재단 리더십은 운영 자율성, 문화예술 전문성, 중장기적 성과평가 시스템 등 문화와 예술의 고유한 가치를 최대화할 수 있는 요인들로 구성된다. 이에 재단의 관리·감독 기관인 지자체와 단체장은 재단 운영의 자율성과 인사·사업 운영의 공정성, 재단 CEO의 문화예술 전문성과 전문경영 능력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및 그에 따른 인사 원칙 등을 존중해야 한다. 이른바 정치권력과 행정권력으로부터의 ‘팔 길이(arm’s length)’가 지켜질 때 비로소 문화재단은 위기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것이 문화와 예술이 가야 할 본연의 길이다.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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