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운명, 왕이 되지 못한 사도세자
조선에는 비운의 세자들이 많다. 왕자의 난도 아니고, 병도 아닌 아버지로부터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를 빼놓을 수 없다. 사도세자는 영조가 41살에 얻은 귀한 아들이다. 그는 태어나며 바로 원자로 책봉됐고 참으로 영특하여 영조의 기대가 나날이 커졌다. 그러나 그가 세자가 되면서 영조와 어긋나기 시작한다. 무인의 기질이 특출났던 그가 점점 학업에 소홀해지며 두사람의 사이가 삐걱거렸다. 또 사도세자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들이 영조의 귀에 흘러가면서 영조는 결심한다. 결국 사도세자는 영조에 의해 귀주에 갇힌다. 기록에는 사실 귀주라는 말이 정확하게 표기는 되어 있지 않지만 아주 좁은 곳에 갇힌 것만은 확실히다. 그날이 바로 1762년 5월13일이었다(이 날짜는 윤달 음력날짜다). 이후 9일 만에 사망했다.가장 위대한 지도자 윈스터 처칠
1940년 5월13일. 영국은 혼란스러운 전시상황에서 총리를 임명한다. 신임총리는 무려 66살로 비장하고 확신에 찬 말투로 국민들 앞에 선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V’로 국민들에게 용기와 리더십을 보여줬다. 그가 바로 윈스터 처칠이다. 1940년대 영국은 독일과 전쟁중이였다. 윈스터 처칠은 이후 1951년 다시 총리로 취임했고, 이후 1953년에는 기사 작위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위대한 영국인 1위로 꼽히기도 했다. 위대한 전쟁영웅이자 정치가, 웅변가, 화가였다고 한다.사도세자와 윈스터 처칠의 시대는 178년 차이가 난다. 사도세자는 비극적인 삶, 윈스터 처칠의 삶은 존경받는 삶이었다. 극명하게 다른 두 삶에서 우리는 운명의 극과 극을 보았다.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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