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은 44번째 ‘어버이날’이었다.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기리는 날로 1973년 제정·공포됐다. 이날이면 자식들은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며 낳아주고 길러주신 은혜에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최근 자식 세대에게 어버이날은 가정의 달 기념일 중 가장 부담스러운 기념일이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의 설문조사에서 대학생과 직장인 모두 ‘어버이날이 가장 부담스럽게 느껴진다(78%)’고 답했다.
이유로는 ‘선물과 용돈 등 경제적인 지출이 크기 때문(60.8%)’, ‘선물 마련과 식당 예약이 번거롭게 느껴진다(9.6%)’, ‘마음에서 우러나지도 않는 선물과 인사를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9.5%)’ 등이었다.
이렇게 변해가는 자식들 모습에 부모들의 가슴은 피멍이 든다. 효도계약서로 권리를 보장받는 이들도 늘고 있지만 대부분 부모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자식들의 따뜻한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
어버이날, 지역 곳곳의 경로당을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어버이날이 대단한 날도 아니고 상관없다”면서도 축하전화 한 통이라도 받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 11시 중구 한 아파트 경로당. 평소 어르신 10~15명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네 사랑방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어르신 3명만 TV를 보고 있었다.
이들은 낯선 기자의 방문에도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어버이날 관련 취재를 하러왔다”고 말하자 김모(75) 할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른 노인양반들은 자식들 따라 다 밥 먹으러 갔어. 어버이날이랍시고 자식들이 찾아와 좋다고 따라간 게지. 하지만 우리들은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아 이렇게 모여서 TV나 보고 있는 겨. 우리들한텐 어버이날 그런 거 없어.”
아침에만 해도 6~7명이 있었지만 점심때가 다가오자 한두 명씩 전화를 받더니 집으로 돌아갔단다. 큰 목소리로 자랑을 하면서다. 옆에 있던 심모(68) 할아버지가 상황을 설명했다.
“아침부터 모인 양반들끼리 자식 놈들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욕을 퍼붓고 있었는데 몇 명이 전화를 받더라고. 통화때는 ‘바쁜데 오지마라’고 생색을 내더니 우리한텐 ‘애들이 점심을 사준다’고 자랑하면서 나가더라고. 얄미우면서도 참 씁쓸했지.”
김 할머니가 옆에서 거들었다. “나이 먹으면 자식 자랑으로 하루하루 지내며 살거든. ‘아들놈이 옷 사줬다’, ‘고기 사줬다’, ‘여행 보내줬다’ 등 이런 거. 이제는 전화라도 좀 자주 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먼저 하기는 좀 그렇고, 부모한테 전화 한통 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잖아?”
다른 경로당에서 만난 어르신들도 비슷했다. “어버이날이 뭐 별거라고, 누구 귀빠진 것도 아닌데 뭣하러 와, 그냥 내가 보고 싶다는 거지”(72세 황모 할아버지·청주), “아들 내외가 어제 미리 왔다갔는데 정말 아쉬워”(77세 이모 할머니·세종) 등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들은 부모였다. 자나깨나 자식걱정 뿐이었다. 자식을 남보다 부족하게 키운 아쉬움과 후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황 할아버지는 “내가 부족하게 키우고 물려준 것도 없어서 애들 살아가는 거 보면 미안하고 잘 살아야할텐데 하는 걱정 뿐”이라며 “이렇게 생각하면 자식에게 특별히 바랄 것도 없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끝을 흐렸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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