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이야기] 어린이날 입하(立夏), 슬그머니 다가온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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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이야기] 어린이날 입하(立夏), 슬그머니 다가온 여름

이팝나무 피고 잡초를 뽑는 시기

  • 승인 2016-05-05 08:01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봄날은 갔다. 그렇게 요란스럽게 오더니, 온 세상을 뒤흔든 강풍의 잔해를 남기고 봄은 그렇게 갔다. 종잡을 수 없는 봄과 달리 여름은 예측하기 쉽다. 덥다가 장마가 오고, 또 덥다. 변덕스러운 봄보다는 단순한, 아니 솔직한 계절이다.

5월5일 어린이날은 입하다. 한자 뜻 그대로 여름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절기다. 흔히 우리말로는 초여름이라 부르는 시기다. 꽃이 지고 이제는 초록의 잎들이 연신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든다. 비로소 신록의 푸릇함이 넘실대는 초록세상.

▲무성하게 자란 초록나무들. 입하시기에 더욱 잘 자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무성하게 자란 초록나무들. 입하시기에 더욱 잘 자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입하 즈음에 피어서 일까. 이름도 입하에서 파생되었을법한 ‘이팝나무’. 5월 초쯤에는 피는 이 나무는 하얀 꽃잎이 꼭 눈가루와 닮았다. 초록 잎을 다 덮고 땅에 떨어져도 사락사락 소리를 낼 것만 같은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 흰쌀밥이 귀했던 시대에는 이팝나무를 보며 풍년을 갈망했다 한다. 대전 유성구에는 가로수마다 이팝나무가 식재되어 있어 마치 눈이 내린 듯 새하얀 거리를 느낄 수 있다. 이맘때가 이팝나무의 절정이다.

청개구리가 울고 지렁이가 나오고 왕과(쥐참외)가 나온다. 입하를 알 수 있는 조상들의 달력과도 같은 자연의 섭리. 요즘이야 청개구리도 지렁이도 보기 힘든 시대인 탓에 자연의 흐름으로는 도저히 절기를 눈치 챌 수 없다.

곡우에 만든 차는 우전차, 입하에 만드는 차는 삼춘차

입하에는 초록 잎이 무성하게 자라기 때문에 잡초를 뽑느라 시골은 분주해진다. 봄비가 한차례 내리고 나면 걷잡을 수 없이 잡초가 자라기 때문이다. 초록잎이 잘 자리니, 찻잎도 잘 자란다. 대게 곡우시기에 수확된 어린잎으로 만든 차를 우전차라 하여 최상급으로 분류한다. 입하시기에도 찻잎을 수확해 만드는데, 우전차에 버금갈 만큼 좋았고 이는 삼춘차, 삼첨이라 불렀다.

▲곡우에 만든 차는 우전차, 입하에 만든 차는 삼춘차라 불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곡우에 만든 차는 우전차, 입하에 만든 차는 삼춘차라 불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입하 바람에 씨나락 몰린다’ 라는 말이 있다. 재래종 벼로 이모작을 하던 시절로 돌아간다. 입하 무렵 재래종 벼는 이모작을 준비했는데 못자리에 볍씨를 뿌려 물을 대 놓는데 이때 바람이 불면 볍씨가 한쪽으로 몰려간다. 이탓에 조상들은 입하 바람을 썩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도 입하를 앞두고 태풍급 강풍이 불었다. 이 바람이 혹 먼 옛날 조상들이 달갑지 않아 했던 그 바람일 수도 있겠다.

어느 절기와 다르지 않게 입하 또한 농사와 관련된 절기였다. 이쯤 잡초를 뽑아 뿌리내린 새싹의 영양을 챙겼고, 지역별로 시기차이는 있지만 모내기가 한창 이뤄진다.

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청춘들이 어디 있을까. 봄봄 노래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우리는 머지않아 여름을 만나려 한다. 자꾸만 짧아지는 봄을 아쉬워하기 때문일까. 코앞까지 다가오는 여름이 야속하지만 계절의 순리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이제 봄과 헤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봄은 힘이 세지만 여름은 그 어느 계절보다 빠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여름안에 살고 있는 셈이다. 슬그머니 다가온 여름을 두팔 벌려 환영하자.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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