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권 목원대 총장 |
주변 사람들 중에 은퇴를 대비해서 슬슬 시골로 떠나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주말농장 같은 것이라도 분양받아 푸성귀를 심고 물 주느라 분주하다. 돌아갈 땅이 있고 식구들이 다 그런 생활을 동경한다면 훌훌 털고 떠나면 되겠지만, 십중팔구는 그렇지 못하다. 누군가의 꿈을 위해 다른 누군가는 희생할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동경하고 그걸 성취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그것이 필시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체호프의 단편소설 <구스베리>를 보면 전원생활을 열망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18세 때부터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여 매일매일 똑 같은 서류작업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전원생활을 동경하기 시작한다. 그가 그토록 자기 땅을 갖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거기에 구스베리를 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강가에 있는 조그만 농장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그는 처절한 내핍생활을 한다. 옷 꼴은 거지나 다를 바 없고 먹는 것에도 돈을 쓰지 않아 몰골이 말이 아니다. 명절 때 형제들과 조그만 선물을 주고받는 것조차 생략해 버렸으니 그는 꿈을 위해 사람의 도리마저 저버린 셈이었다. 그의 동경(憧憬)은 점점 강해져서 갈망(渴望)이 되고 그것은 다시 지상명령이 된다. 신문을 봐도 부동산 광고란만 읽는다. 땅을 살 돈이 아직 부족하지만 광고에 올라온 매물을 보면서 농장을 어떻게 꾸밀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큰 즐거움이다. 수십 년 간 그의 삶은 온통 농장을 구입하는 것을 중심으로 해서 돌아간다. 그렇기에 사십이 넘도록 결혼할 생각도 않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어느 미망인과 결혼을 하는데, 그것은 오로지 그녀의 돈을 농장 구입하는 데 보태기 위해서였다. 결혼하고 나서도 내핍생활은 계속되어 그의 부인은 결국 영양실조로 죽는다.
그가 드디어 농장주가 된다. 큼지막한 집을 짓고 많은 머슴들을 거느리며 거들먹거린다. 돈 몇 푼만 쥐어주면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의 명령을 거스르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드디어 구스베리가 열렸고, 채 익지 않아 떫은 그 열매를 씹으며 그는 매우 만족스럽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이런 사람들의 창문에다가 종을 매달아놓고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이룩한 것이 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침묵을 대가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 만족은 안일(安逸)일뿐 진정한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란 것이다.
최근 언론의 거듭된 질타에도 불구하고 가진 자들의 갑질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들이 이룬 부(富)와 권력이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희생과 침묵을 바탕으로 이룩된 것임을 자각한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갑질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그들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02년 프랑스에서 실시한 행복의 조건에 대한 여론조사의 결과가 그것을 말해준다. 그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사람들이 꼽은 행복의 조건 중 첫째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어서 둘째가 삶이 자신에게 베푼 것을 감사하는 것이고, 셋째는 꿈을 갖고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것, 넷째는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며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었다.
신록의 계절에 계란 껍데기만한 땅에 상추를 심으면서도 마음속으론 그걸 누군가와 나눌까 생각하는 마음, 그게 진정한 행복 아닐까?
박노권 목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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