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기고]여우같은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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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기고]여우같은 며느리…

  • 승인 2016-05-02 14:28
  • 김소영(태민)김소영(태민)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신지 5년째. 매주 토요일 아침부터 음식준비로 분주하다.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시자 솔로가 되신 아버님께선 홀로서기를 해보시겠다고 분가를 하셨다.

식사도 혼자 해드시겠다고 아무 걱정하지 말라 호언장담하시더니 이내 손발 다 드시고 SOS를 보내 오셨다. 아버님께선 막상 혼자 계셔보니 적적함에 우리가 찾아올 날만을 기다리시는 신세가 되어 버리셨다. 이른바 독거노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아버님의 SOS는 내게는 퍽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되어 내심으로 은근히 아버님을 더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족은 매주 일주일치 음식을 준비하여 찾아뵙고 있다.

일요일마다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 가지고 온 가족이 아버님을 찾아뵙는다는 것. 그것은 내가 우리 가정에서의 존재를 확실히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낙숫물은 늘 제자리에 떨어진다 하는데 내가 아버님께 하는 행동을 내 아이들이 보며 자라게 될 것이고, 남편은 남편대로 아버님에 대한 나의 효심을 보며 내 존재를 다시 인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님의 SOS가 나에게는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 가정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가훈으로 내 걸지는 않았지만 우리 남편은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고 나도 친정 부모님으로부터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 배워왔다. 그래서 자칫 홀로 되신 아버님께 섭섭하게 해드려 가정의 화목이 무너질까 조심스럽다.

▲ 김소영(태민)
▲ 김소영(태민)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날에 용안현에 살고 있던 이보는 그 아버지 태방이 사나운 병을 얻어 거의 죽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달여 드려 구해 냈다하고, 심청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선인들에게 몸을 팔았다하나 이런 효는 오히려 불효에 해당하며 현실 적으로는 권할 수 없는 효인 것이다. 병을 고친 아버지가 낫게 되어 손가락 잘린 이유를 알게 된다면 평생 동안 아들의 잘린 손가락을 보며 얼마나 괴로워 할 것이며, 딸의 희생으로 눈을 뜨게 된 심청의 아버지는 눈을 뜬 후 딸이 죽게 된 이유를 알게 되면 얼마나 애통해하며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고전에나 머물러 있어야 할 이런 효인 것이다. 헌신을 요구하는 효는 그 실효성이 인정되나 희생을 강요하는 효는 현대적 효가 아니기 때문이다.

옛말에 '곰같은 며느리보다 여우같은 며느리가 낫다' 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현명한 며느리는 시부모님을 칭찬해 드리고 그 앞에서 아양을 떠는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는 말을 아버님께서는 자주하신다. 당신의 손주들에게 칭찬을 자주 해주라고 하시면서… "어휴 아버님 참 잘 하셨어요.", "어쩜 그렇게 잘 하세요?" 라고 칭찬으로 기운을 북돋아 드리면 눈가에 살포시 주름살을 일으키며 좋아하는 모습을 띠신다.

한 술 더 떠서 "아버님 이것도 한번 해보세요." 라고 무슨 일(가령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권해드리면 일주일 내내 며느리에게 칭찬받기 위해 열심히 그 일을 하고 계신다.

어떤 때는 그 모습이 순수한 어린아이 모습처럼 보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커피를 맛있게 타 가지고 가서 아버님께 드리며, “아버님, 부라보”라고 하며 커피 잔을 짱하고 부딪치며 둘이서 ‘부라보’를 외칠 때면 참 행복해 하신다. 나도 물론 행복했다. 행복은 작은 것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지금은 밝아지시고 홀로서기에 적응을 잘하고 계신다. 또한 친구분들과 형제분들이 자주 방문을 하시어 적적하지 않다고 하신다.

얼마전에는 며느리 힘들다며 이젠 2주에 한번만 와도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예, 아버님 그럴게요” 대답은 “예, 아버님 그럴게요”라고 했지만 물론 그렇게 할 순 없다. 내 나이가 아직은 젊고, 내 두 아이들이 보며 자라고 있으며, 이런 일로 인해 남편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심성스럽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님, 걱정 마세요. 하나 밖에 없는 며느리 저 안보시면 섭섭해 하시는 걸 제가 잘 알고 있는 걸요’ 돌아오는 길,저 멀리서 손 흔들어 배웅해주시는 아버님이 더 외로와 보이셨다. 그러니 더욱 그럴 순 없다.

/김소영(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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