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훈 한남대 총장 |
그러나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이 땅에 복음을 전하고 세계 평화와 선한 지도자 양성을 꿈꾸며 복음과 교육을 중심으로 대학 설립을 기획하고 실천에 옮겼다. 선교사들의 꿈과 목표는 지금의 한남대 교훈에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한남대학교 교훈은 진리·자유·봉사로 이를 한 문장으로 이해하면,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그 자유를 봉사를 통해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세계 평화와 세계 복음화를 이루라'고 해석할 수 있다. 대전대학의 설립은 단순히 어느 개인의, 어느 집단의 물리적 이해와 경제적 여건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다. 대학 설립을 통해 진리 안에서 지역사회와 국가 나아가 세계 평화와 복음을 전파할 지도자를 기르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대전대학 설립을 통해 이 땅의 젊은이들은 꿈을 꾸기 시작했고, 지역사회와 국가 경제는 발전의 초석을 다지기 시작했다.
1970~80년대 우리나라와 한남대학은 엄청난 갈등과 위기에 싸여있었다. 분단국가라는 현실과 민주화의 열망은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웠고 대학성장과의 문제는 구성원들의 소통없이 숭전대학교 대전캠퍼스로 변화되어 있었다.
1970~80년대 우리나라 산업화는 성장을 위해 여러 의견을 듣기보다는 정책결정자 의견을 따름과 동시에 국민(근로자)의 권리를 포기하고 성장 중심에 모든 것을 거는 전략으로 나타났다. '선(先)성장 후(後)분배' 논리야말로 선진국의 산업을 추격하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구호였다. 그 결과 성장은 가파르게 이뤄지고 경제적 삶은 빠르게 향상되었다. 하지만 민주화와 인권, 자유로운 의지에 대한 갈망을 점점 커갔고 나라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한남대 역시 숭전대에서 분리하고자 분리 운동을 펼치며 갈등과 위기의 한복판에 섰다. 서울 캠퍼스 중심 운영으로 인해 발전과 정책 결정에서 소외된 대전 캠퍼스 구성원들의 분리 운동이었지만 그 역시 민주화와 인권(권리), 자유로운 의지에 대한 갈망의 표시였다고 할 수 있다.
1970~80년 대 우리나라와 한남대학의 상황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대내적인 민주화와 대외적인 자주화 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픈 상처가 남긴 하였지만 지금은 그러한 갈등과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한남대학은 또 같은 궤를 걸었다고 할 수 있다.
한남대는 대학으로 몰아친 국가적 갈등과 대학 분리 갈등,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된 위기들을 구성원의 지혜와 단합, 그리고 간절한 기도로 극복하고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지만 독재정권 하에서의 대전대학 이름은 타대학이 사용하게 되어 대학의 아이덴티티라는 면에서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다. 60년이란 '시간'은 우리나라나 한남대학에게는 길고도 험한 시간이었다. 우리나라는 전쟁과 그로 인한 전 국토의 폐허화,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그 때문에 생긴 이념 논쟁과 일상회 되다시피한 데모 등 갈등의 폭이 깊었고, 한남대학 역시 그러한 나라 상황에서 대전대-숭전대-한남대의 분리 운동으로 인한 내홍까지 겪으면서 힘든 시기를 거쳐왔다.
이제는 새로운 세계관과 관점이 필요한 시기다. 인터넷망의 확대·디지털 기술의 발달·국제화되는 사회, 더욱이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은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대학 역시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지 그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국민·구성원 모두의 생각과 의지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소통'을 중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와 대학 역시 누구 한 사람, 또는 몇몇 사람의 이론과 생각으로 운영할 수 없다.
지난 60년 동안 한남대학은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했다. 대학을 소홀히 하는 지역사회가 있을 수 없듯이, 지역사회를 소홀히 하는 대학 또한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한남대학의 철학이다. 한남대학이 지역사회의 경제·문화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이 지역사회 역시 한남대학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한남대학의 60년을 되짚어 보면서 한남대학을 세운 선교사들의 진리·자유·봉사에 대한 갈망을 되새기고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한남대학의 미래에 대해 또 다른 각오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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