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한국으로 시집온지 11년이 됐다. 지난 2005년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낳고 기르면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멋진 엄마가 되기위해 노력하지만 항상 부족하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때 당황하셨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는 “다시 생각해 봐라. 후회하게 될 것이다”며 매일 나를 설득했다.
아버지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였다. 한번 가본적도 없는 낯선 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딸을 어떻게 떠나 보낼 수 있을까. 아버지는 마음의 상처가 크셨는지 “없는 자식으로 생각한다”고 결심하셨다.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나의 선택을 응원해 주시며 떠나는 딸을 위해 짐을 싸주셨다. 이렇게 한국생활이 시작됐다.
한국에 온지 1년 만인 2006년 첫 아이를 낳았다. 그후 돌잔치가 다가오면서 부모님을 초대해야 겠다는 큰 결심을 했다. 어머니는 몇 차례 한국에 오셨지만, 아버지는 첫 방문이었다.
2년만에 본 아버지는 흰머리와 주름이 많아 지졌다. 공항에서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은 잊을 수가 없는 인생의 한 장면이 됐다.
부모님을 모시고 시댁에 도착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시아버지가 갑자기 나에게 “통역을 하라”고 하시며 이야기를 꺼냈다. 시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소중하고 따님을 한국에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에게도 딸이 있지만 외국으로 시집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반대할 건데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셨습니까. 이렇게 손자까지 보게 해준 아츠꼬는 이제 딸과 같습니다. 여러 가지 걱정이 많으시겠지만 저희가 책임을 다해 지키겠습니다.”
말씀을 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내가 얼마나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고 성장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 아이 엄마가 된 지금도 부모님에게 나는 소중한 딸인 것도 알게 됐다.
그후 부모님은 사랑하는 딸과 손자를 보려고 한국에 오신다. 손자들의 말도 곧잘 알아들으시고 즐거워 하신다.
한국에 첫 방문한 우리 부모님께 시부모님이 사랑의 마음을 전하면서 부모님도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이런 시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지금도 큰 사랑으로 지켜주신 양가(한·일)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세종=아츠코 명예기자(일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