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향기에 취해서 벤치에 누우렸더니
지나던 송화가루가
제 먼저 와 앉았다.
-이기선, ‘어느 봄날’
4월이다.
살구꽃, 벚꽃에 꿀벌 잉잉대고 봄나비 사뿐히 영산홍 꽃에 앉아 꽃술에 입대는 달콤하고 따사롭기만 한 4월이다.
모진 겨울과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초록빛 신록이 강산을 물들이는 싱그러운 4월이다. T.S 엘리엇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한 것은 지난해 가버힌 사람이 4월이 오니 못견디게 그리워져 토하듯 뱉은 혼자말..
4월이 그토록 아름다워 잔인한다는 의미...
4월은 이토록 생명과 사랑이 움트는 감미로운 계절이다.
무엇들 하는가.
이 아까운 계절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아지랑이 보며 어린아이 손잡고 들로 산으로 꽃구경하러 가지 않고서...
언제 다시 이 따사로운 계절로 돌아올 수 있으리, 어서 이 봄을 만끽하지 않고서...
하지만, 우리에게 4월은 잔인하다.
왜 우리의 4월에는 비극이 그렇게도 많은지. 제주 4.3사태, 세월호 참사, 제암리 학살, 4.19...
예전에는 수없는 학생데모와 노동계 춘투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금년, 4.13총선의 상처가 많은 사람을 비참하고 잔인하게 만들었다.
모르긴 해도 올 4월은 한겨울보다 더 혹독한 긴장과 매서운 추위가 변화라는 이름으로 불어닥칠지 모른다.
여소야대의 정국과 대선을 앞둔 살벌한 전초전, 거기에 심상찮은 북한의 위험한 동향. 순조롭지 못한 세계경제.
앞으로 공직사회와 경제계, 아니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어떤 물결이 쓰나미가 되어 덮칠지 불안할 지경이다.
일본의 구마모토현, 에쿠아도르의 대규모 연쇄 지진발생은 그것이 비록 남의 나라 일이라 해도 왠지 마음 속에 드리워지는 불안의 그늘을 더욱 짙게 만드는 듯만 하다.
▲ 최민호 전 국무총리비서실장 |
진정 금년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창밖으로 눈만 돌려도 찬란하게 빛나는 이 아름다운 계절의 쏟아지는 축복을 즐겨보지도 못하고 우리는 어둠을 응시하며 차갑게 몸을 떨고 있다.
하지만 자연이, 아니 하늘이 4월이라는 축복을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갈등, 반복되는 투쟁, 해묵은 상처 헤집기, 그리고 잊혀질만한 미움을 더 키우라는 것일까.
아니다.
이 계절에 벌 나비가 교접하고, 온갖 꽃이 화사하게 만개하며, 따사로운 햇살이 온 누리를 비치는 것은 바로 온 세상의 생물들이 사랑하고 화합하고 소통함으로써 가을이면 손에 얻을 충실한 열매를 맺게 하는데 하늘의 그 고고한 뜻이 있으렷다.
막 시작되는 파종의 시기에 씨를 뿌리지 않아 잔인한 파국으로 치달을 수는 없다.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 하여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살 수는 없다.
화합의 시절에 불화하고, 사랑의 계절에 미워하고, 용서의 시기에 저주하고, 소통의 시점에 제 주장만 내세운다면 결실의 계절 가을에 우리는 얻을 것이 없을 것이다.
이른바 정치라는 이름하에 갈등과 투쟁이 합리화될 수 없으며, 민주라는 이름으로 이기적 행동이 미화될 수 없는 것처럼, 경제라는 아니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욕심이 용납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공직자들의 자세는 잔인한 세태일수록 더욱 그 빛을 발한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의연히 버티는 공직자가 얼마나 있느냐는 것은 치열한 전쟁에서 적을 향해 공격하는 군인이 얼마나 있느냐와 같은 것이다.
정확히 그 수에 비례에 그 나라는 지켜질 것이다. 혼란에 우왕좌왕하는 기회주의자가 오롯한 열매를 맺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4월에 자연의 법칙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랑과 소통의 시기를 놓쳐버리고, 꽃피워 열매 만드는 화합의 기회를 놓쳐버리면, 보잘 것 없는 열매로 가을에는 무서운 하늘의 심판이 민심으로 나타나리라.
벌이 먼저인지 꽃이 먼저인지 따질 것 없듯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눈치볼 것도 없다.
승자가 먼저 손을 내밀고, 가해자가 먼저 포용하며, 가진 자가 우선 팔을 벌려야 한다.
4월을 따사로운 4월로 만들어야 한다.
T.S 엘리엇은 틀렸다.
4월은 이제 우리의 화합으로 인해 잔인한 달도, 잔인해서도 안되는 따사로운 달인 것이다.
/최민호 전 국무총리비서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