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살고 싶어서 시 씁니다.”
지난 20일 오후7시 대전 중구 커피맨션문장에서 열린 황인찬 시인 낭독회에서 ‘왜 시를 쓰냐’는 어느 독자의 질문에 황 시인은 이같이 답했다.
박진성 시인과 대홍동 커피맨션문장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낭독회 두 번째 시간에 황인찬 시인이 독자들과 마주했다. ‘문단의 아이돌’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황 시인의 낭독회에 온 30여명의 독자 중엔 여고생부터 중년여성까지 객석의 사분의 삼이 여자였다.
낭독회 진행을 맡은 손미 시인의 소개로 등장한 황 시인은 자리에 앉아 중저음의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시인은 이날이 대전에 두 번째 방문한 날이라고 한다. “재작년쯤 박진성 시인의 초대로 대전에 와서 재밌게 놀다간 기억이 있다”며 “낭독회가 엄청 재밌는 자리는 아니지만 봄날 저녁 함께하기 위해 이곳까지 와주셔서 고맙고 좋은 시간 보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최근 근황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트위터를 하고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며 “공부에 소질 없는 걸 깨닫는 중인데 열심히 시도 쓰고, 생각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시인은 지난해 9월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민음사)를 세상에 내놓았다. 2012년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민음사)를 출간한 후 3년 만이다.
황 시인은 “첫 번째 시집은 첫걸음이라 그 자체가 의미 있었다면 두 번째 시집은 다음 발자국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획 단계서부터 고민 속에서 만들었다”며 “어디로 갈지 너무 어려웠는데 그 ‘모르겠다’는 걸로 시를 써야겠다 해서 첫 번째 시집에 대한 안티로 시집이 나왔다”고 창작 과정을 설명했다.
본격적인 시 낭독이 시작됐다. 낭독은 시인과 객석에 앉은 독자 몇몇이 순서대로 시를 읽고 시에 관련한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됐다. 첫 번째 낭독 시 ‘종로삼가’를 객석에 앉은 신이아(여) 씨가 낮은 목소리로 읽은 데 이어 황 시인이 ‘다정과 다감’이라는 시를 낭독했다. 시인의 분명하고 낮은 목소리에 관객들은 지그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거나 동영상을 찍는 등 시에 집중했다.
이날 손미 시인과 함께 진행을 맡은 박진성 시인의 “황 시인의 시에선 냉소가 느껴지는데 그런 기질이 있느냐”는 질문에 황 시인은 “앓는 소리를 하는 게 쪽팔리고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는데 내가 나를 지탱하고 믿기 어려울 때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다 보니 그게 시에도 묻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진성 시인은 이날 신작 미발표시 ‘벚꽃과 총알’(부제 황인찬에게)을 낭독해 자리에 의미를 더했다. 박 시인은 이 시에 대해 “인간의 구원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었고 황인찬 시인의 시에 기대 그것을 같이 고민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휴가’, ‘희지의 세계’, ‘인덱스’, ‘머리와 어깨’, ‘오수’, ‘사랑이 끝나도 우리는 법 앞에 서 있다’, ‘무화과 숲’(시집‘구관조 씻기기’ 수록), ‘멍하면 멍’을 이어서 낭독하고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시인은 ‘왜 시를 쓰냐’는 한 독자의 질문에 “시인으로 살려고 시를 쓴다”고 답했다. “시가 목적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허망해진다”며 “시인으로 살고 싶어서 시를 쓰는데, 유명해지고 싶고, 특별해지고 싶고, 이름을 남기고 싶어서 시를 쓴다”고 시에 대한 솔직한 태도를 밝혔다.
시인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당분간은 세 번째 시집을 낼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군대에 가야 하고 전역하는 2020년 이후에야 새 시집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임효인 기자 hyo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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